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
이광호 외 지음/ 푸른역사 펴냄
'매선(梅仙)이 쓸쓸한 나의 짝이 되어/객창 깨끗하고 꿈길도 향기로웠네/동쪽으로 돌아가며 데리고 가지 못해 서운하니/서울 티끌 속에서도 예쁜 모습 잘 간직하게나'
매화가 답한다. '도산의 내 벗들이 쓸쓸하게 지낸다고 들었는데/공이 돌아가면 가장 멋진 향기 피우리라/마주하는 곳에서나 그리워하는 곳에서나/옥설 같은 맑고 참됨 고이 간직하였으면'
1569년 봄, 선조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자 퇴계는 집에서 기르던 매화와 가장 먼저 이별의 시를 이렇게 주고받았다.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 퇴계 이황하면 떠오르는 두 키워드는 '매화'와 '성학십도'다. 평생을 걸쳐 매화를 사랑한 퇴계는 100여 편이 넘는 매화시를 지어 '매화시첩'을 엮었고, 18세 선조를 위해 임금의 오만과 안일을 경계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성리학의 요체를 그린 '성학십도'를 올렸다.
퇴계는 칠십 평생을 살며 한양과 안동 사이를 19차례 왕복했다. 34세에 대과를 치르기까지 오르내린 것이 7차례이며 벼슬에 나아가 오간 것이 12차례다.
책은 퇴계의 정신을 공부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모인 '도산서원 참공부모임' 회원들이 2019년 선생의 마지막 귀향 45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700리길을 13일 동안 걷는 재현행사를 진행하면서 13인의 회원들이 경험한 내용을 엮은 퇴계정신 입문 답사기다.
요즘 사람들은 물리나기보다는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하고, 남보다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나 퇴계는 임금의 부름에 극구 사양한 '물러남'의 미덕을 지킨 학자다.
퇴계가 추구했던 것은 높은 벼슬과 그에 따른 명예나 이득이 아니었고 내면으로 침잠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찾고 회복하는 군자의 길이었다. 이른바 '나를 위한 학문'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책은 이러한 퇴계의 유학세계를 풀어주는 나침반 역할과 함께 거유의 인간적 풍모를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퇴계에 관한 옛 이야기도 풍성하다. 예를 들면 천 원 권 지폐에 담긴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의 경우 퇴계가 고향 계상에서 '주자서절요'를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란 일화나, 조선왕실의 골칫거리였던 '종계변무' 문제가 고려 말 명나라로 망명한 윤이와 이초의 농간 탓이었다는 뜻밖의 사실도 접할 수 있다.
책 말미에 '사람이 길을 넓히는 것이지, 길이 사람을 넓혀 주는 건 아니다'는 논어 인용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이 적지 않다. 296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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