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친소] 휠체어 타고 '영차!'…장애견 뽀롱이의 견생 2막

입력 2021-04-05 14:30:00 수정 2022-04-18 16:17:38

허리 디스크 뒷다리 마비 걷지 못해…엎드리지 못해 불편하게 앉아있고
엉덩이로 움직이다 보니 피부 발진…수술비 수백만원에 완치 보장도 없어
불편한 다리엔 보행 보조기구 장착…"가족같은 아이 끝까지 책임지려 최선"

뽀롱이는 허리를 일으키지 못하다 보니 대소변 처리가 가장 힘들다. 배변 판에 직접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니 기저귀를 채울 수밖에 없다.
뽀롱이는 허리를 일으키지 못하다 보니 대소변 처리가 가장 힘들다. 배변 판에 직접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니 기저귀를 채울 수밖에 없다.

뽀롱이가 뒷 다리를 휠체어에 의지한 채 대구 신천 둔치를 걷고 있다.
뽀롱이가 뒷 다리를 휠체어에 의지한 채 대구 신천 둔치를 걷고 있다.

대구 신천 둔치에 꽃이 활짝 폈다. 형형색색 저머다 어여쁜 자태를 뽐낸다. 그 포근한 풍경 너머 작고 흰 개 한 마리가 보인다. 휠체어에 뒷다리를 올리고 분주하게도 움직인다. 그러다 제 몸만 한 바퀴가 버거운지 멈췄다 섰다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개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하다. 영차 영차, 주인과 보조를 맞추는 게 신이 난 모양이다.

완연한 봄이다. 작은 개에게 봄이 왔다. 얼마 전까지 바닥에 엉덩이를 끌고 다니던 개는 길고 긴 겨울을 용케 버텨냈다. "뽀롱이와 10년째 맞는 봄이 왔네요" 수성구에 사는 견주 김지희 씨는 이 계절이 유난히 반갑다. 늙은 개가 여전히 곁에 있음에 감사하다.

◆ 허리디스크 발병으로 뒷 다리 못 쓰게 돼

작년 5월, 뽀롱이는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옆으로 걷길래 이상하다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자 선 자세에서 앉지 못했고, 몸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스테로이드 약을 처방받고 잠깐 호전을 보였으나 이내 걷지 못하게 됐다. "혼자 보행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해도 걷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더군다나 수술비는 적게는 오백만 원부터 천만 원 사이. 수술비를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았고, 노견이라 수술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의사는 결국 안락사를 권했다. 지희 씨는 낑낑대는 뽀롱이를 안고 매일 같이 울었다.

뽀롱이가 강아지 한방 병원에서 침 치료를 받고 있다
뽀롱이가 강아지 한방 병원에서 침 치료를 받고 있다

수소문 끝에 뽀롱이와 같은 증상을 가진 강아지들이 다닌다는 병원을 찾았다. 침, 뜸, 레이저 치료를 하는 강아지 한방 병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통증을 줄이는 약과 허리디스크 약도 함께 복용했다. 다시 두 발로 뛰어다니는 기적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근육이 손실되며 찾아온 몸 떨림은 많이 완화됐다. 그럼에도 뽀롱이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루아침에 못 걷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뽀롱이의 표정이 아닐까 싶다.

뜸 치료를 병행한 뒤 뽀롱이의 몸 떨림은 많이 개선 됐다.
뜸 치료를 병행한 뒤 뽀롱이의 몸 떨림은 많이 개선 됐다.

◆ 마비된 두 발 보조하는 휠체어 생활 시작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산책 나가자고 조르던 아이였는데,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엎드리지도 못해 불편하게 겨우 앉아있고, 엉덩이로 이동을 하다 보니 바닥에 쓸린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맞춤형 휠체어는 가격이 꽤 나갔다. 아무리 싸다 해도 30만 원선. 뽀롱이 치료에매번 25만 원 이상의 지출이 나가고 있었기에 현실적으로 부담이 컸다. 그러다 인터넷을 통해 기성 휠체어를 판매하는 곳을 찾게 됐다. 반려견의 몸무게, 높이, 몸통폭, 몸길이에 따라 6개의 사이즈로 나눠져 있다. 반려견과 근접한 사이즈의 휠체어를 골라 주문을 하면 된다. 뒷다리가 불편한 아이를 위한 2륜 형, 앞다리, 뒷다리 모두 못 쓰는 아이를 위한 4륜 형이 있다.

하반신 마비가 되며 엎드리지도 못해 불편하게 겨우 앉아있고, 엉덩이로 이동을 하다 보니 바닥에 쓸린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하반신 마비가 되며 엎드리지도 못해 불편하게 겨우 앉아있고, 엉덩이로 이동을 하다 보니 바닥에 쓸린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휠체어가 배송 온 날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뽀롱이는 분명 10년을 네 발로 뛰어다녔다. 못 걷게 된 건 몇 달도 채 안 되는데 휠체어에 탄 뽀롱이의 모습은 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 같았다. 뽀롱이는 다행히 큰 거부감 없이 휠체어를 받아들였다. 처음 휠체어를 채울 땐 얼음처럼 가만히 있다가 금세 조금씩 앞발로 휠체어를 끌었다. 걷다가도 자꾸만 뒤를 돌아 봤다. "누나, 나 걷고 있어"

판매소의 권유대로 첫날은 10분, 다음날은 30분, 그리고 1시간, 2시간씩 차근차근 착용 시간을 늘려갔다. 적응 기간을 가지다 1개월이 지났을 쯤 제대로 된 야외 산책을 시켰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강아지를 많이 볼 수 없다 보니 산책을 나설 때면 신기해하는 반응이 대다수다.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게 처음에는 신경도 많이 쓰였다고.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아닌 안타까움과 응원의 시선이 많았기에 차츰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다리가 조금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 오셨다. "너도 나처럼 다리가 아픈가 보네? 너도 이렇게 휠체어 타고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힘을 내는데 나도 힘을 내봐야겠다"라며 파이팅을 외치셨다고. 이제는 꼬리도 조금씩 움직이고, 산책할 때 뒷발도 앞뒤로 걷듯이 움직이고 있다.

휠체어 생활로 뽀롱이는 이제는 꼬리도 조금씩 움직이고, 산책할 때 뒷발도 앞뒤로 걷듯이 움직이고 있다.
휠체어 생활로 뽀롱이는 이제는 꼬리도 조금씩 움직이고, 산책할 때 뒷발도 앞뒤로 걷듯이 움직이고 있다.

◆ 병원비·간호 부담에 잠깐 포기할까 고민도

병원비가 부담돼 가족을 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덧붙이자면 이 병은 보험도 안 되고, 병원마다 부르는 진료비도 제각각이다. 이러한 이유로 매년 수만 마리의 유기 동물이 생겨난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든 유기는 정당화 될 수 없다. 하지만 지희 씨는 말한다. "아픈 강아지를 유기하는 사람을 보면 이해를 못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어떻게 버리나. 하지만 뽀롱이가 아프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이 아주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뽀롱이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던 날, 지희 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를 살려내야겠다는 생각도 컸지만 당장은 병원비 걱정이 앞섰다.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을까. 몇 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샜다. 그러다 마음을 다 잡았다. 10년을 내 동생으로 키운 아이였고, 이 아이가 가족에게 가져온 기쁨을 생각하면 절대 멈출 수 없었다. "모든 걸 해줄 순 없겠지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치료비만이 문제가 아니다. 병든 강아지를 간호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기 때문. 뽀롱이는 허리를 일으키지 못하다 보니 대소변 처리가 가장 힘들다. 배변 판에 직접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채울 수밖에 없다. 기저귀를 차지 않아도 대변을 보려 할 때 항문 부분이 커지기 때문에 허리를 세우는 것을 도와줘야 가능하다. 미처 돕지 못할 경우엔 앉은 상태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치우고, 씻기고 하는 게 고역이다. 이 뿐만인가. 기저귀를 채우다 보니 공기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피부가 헐거나 트러블이 나는 경우도 잦다.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부채로 말려주고 알로에를 발라주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24시간 붙어서 관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치료가 힘들지만 뽀롱이는 오늘도 힘을 낸다. 힘을 내는 녀석을 보며 지희 씨 가족도 마음을 다잡는다.
치료가 힘들지만 뽀롱이는 오늘도 힘을 낸다. 힘을 내는 녀석을 보며 지희 씨 가족도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 가족들의 고충을 아는 걸까. 뽀롱이는 힘을 낸다. 녀석을 보며 지희 씨 가족은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과도한 반려동물 병원비는 개선이 필요하다 말한다. 반려동물은 사람 같은 건강보험이 없다. 여기에 일부 동물 병원에서 벌어지는 '과잉진료', '고가 진료'가 한 몫 거든다. "아픈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참 힘들어요. 거기에다가 병원비도 엄두가 안 나고..". 반려인이 가족처럼 대하던 반려동물을 버린다면 죄를 짓는 일일 것이다. 만일 그 이유가 병원비라면, 비싼 병원비가 그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