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4월 첫머리에 섰다. '4'라는 글자를 생각할 때 누구는 '네잎클로버'(행운)의 4를, 누구는 '죽을 사'(死)의 4를 떠올릴 수도 있으리라. 이처럼 4월의 사(四) 자에는 별의 기쁨도 사멸의 슬픔도 동거한다. 4월쯤이면 벚꽃이 지고 이팝・조팝나무 꽃이 환히 피니 1년 중 볼 것은 다 봤다는 느낌마저 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피었다 곧 지고 마는 꽃처럼, 권력의 무상감도 목도하고 말았다.
3·15 부정선거로 일어난 4·19혁명을 생각하면 4월엔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저항과 심판의 기운도 살아 있다. '개벽, 다시 개벽'으로 나아가며, 한판 뒤집어엎는 민초들의 무서운 저력 말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보듯, 원이 하늘의 형식이자 언어라면, 사각은 대지가 기억하는 가장 안정된 형식이자 언어이다. 바둑・장기・체스판, 축구・권투경기장 등 우리가 선호하는 게임장은 대개 사각을 기본 틀로 한다. 이 사각 속에서 우리는 전쟁하고 격투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서울・부산의 시장 보궐선거로 전국이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상대방을 향해 온갖 네거티브를 쏟아내던 선거판 분위기는 아마 이번 보궐선거로 끝나지 않으리라. 내년의 대선을 향해 가며 더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 지속될 것이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전혀) 갈 길은 하나 없소"라는 시처럼, 패 가르기, 갈라치기로 나라는 갈래갈래 갈 길을 더 헤맬 수 있다. 네 갈래 길 한복판에 서서 사분오열 서로 마이크를 쥐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피 잡기 어렵다고 호소할 것이다. 모두 "일자리, 삶의 자리를 달라!"는 것이리라.
그래도 선거가 있어서 좋다. 위선・내로남불・후안무치이던 잘난 권력도 투표라는 심판 앞에서는 반성과 사죄의 읍소를 내비치니 말이다. 물론 속임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건방졌다간 한 방에 훅 가고 만다는 것쯤은 직감하고 있을 터다. 그러나 낙관과 방심은 금물이다. "파리가 싹싹 빌 때 사과한다 착각 말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눈물지어도 악어는 악어의 성질을, 전갈은 전갈의 본성을 버리지 않는다. 도둑은 도둑의 길을 걷다가, 권력자는 권력자의 길을 걷다가 죽는다. 모두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그 원동력은 맹목적 탐욕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불유구'(不踰矩·법도를 넘지 않는다)라는 암묵지로서의 공정성과 상식을 뭉개버린 듯하다. 국가가 지탱되는 임계점의 기준은 신뢰다. 신뢰를 상실하고 나면 정치는 끝이다. 협박도 읍소도 안 통한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케이크를 자르는 칼을 들고 있다. 이 칼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방법으로 사용되어야 할 물건이다.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을 어기면 LH 사태에서 보듯이 '묘서동처'(猫鼠同處) 즉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는' 격이 된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한패가 되어 있으니 나라 꼴이 뭐가 되겠나. 법과 윤리의 선이 사라지면 국정은 파탄 난다.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어떤 사죄도 변명도 먹히지 않는다. 청와대의 보좌진이 가끔 "대통령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느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느니 하는 식의 감성적 겁박을 토로하나 우이독경이다. 정작 화가 치미는 쪽은 국민이고, 불타는 것은 민심 아닌가. 돈을 마구 풀어 대는 것 대신 제대로 된 일자리의 비전으로 삶의 자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여당은 남은 임기 동안 민생 안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더욱 겸손・솔직하게 소통하며, 상식과 공정이라는 기본을 지켜 가야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선거에 이겼다고 우쭐대서도 안 되고, 졌다고 침울해할 것도 아니다. 국민들은 바닷물과 같아서 참다 참다 안 되면 항상 성난 파도로 배를 뒤집어엎어 왔다. '자, 봐라.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간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 가르칠 것이다. 꼼수 부릴 시간 있으면 사즉생의 자세로 민심이나 잘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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