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리아는 고스톱의 메카인가

입력 2021-04-26 12:02:27 수정 2021-04-26 18:40:08

천기석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천기석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천기석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오래전의 얘기다. 이탈리아 국립나폴리대학교에 파견되어 한국학 강의를 했다. 숙소가 2시간 가까이 걸리는 로마 시내에 있어 출퇴근 통근을 하기는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수요일 강의를 마칠 때까지 나폴리에 머물렀다.

나폴리에 가면 내가 머무는 호텔이 정해져 있었다. 그 호텔의 안내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미국 사람은 밤 10시까지 돌아오라. 영국 사람은 밤 늦게 햄릿을 읽지 말라. 이탈리아 사람들은 밤 늦게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리고 한국인에게도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밤늦게 고스톱을 하지 말라." 지금은 세월이 흘러 안내판은 없어지고 그랬다는 말만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 대학의 동료 교수들은 나를 보고 'Professore Go-Stop'(고스톱 교수님)이란 농담을 걸어왔다. 나는 그때마다 프랑스 교수에게는 'Frog'(개구리), 영국인 교수에게는 'Beef steak'(비프 스테이크)라고 맞대응을 하였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늘 찜찜하였다. 이것이 조국애란 말인가? 오늘의 우리나라 현실은 어떠한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내가 사는 대구의 인구는 총 250만 명인데, 그중 노인 인구는 40만 명에 이른다. 경로당이 1천500개나 있다고 한다. 경로당 1곳 회원을 30명으로 계산하면 총이용자는 45만 명에 이른다.

예전 경로당에 모이는 어르신들은 소일거리로 할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경로당에는 화투를 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대구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요즘엔 경로당에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도입되어 그런 풍경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도 적지는 않은 모양이다. 화투가 치매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별로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치매 예방에는 다른 방법이 많을 것이다.

이제는 시니어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새로운 시니어 문화가 절실하다. 지구촌 시니어 문화 흐름을 따르도록 하면 어떨까? 우리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꼰대로 매김되는 것은 가슴 아프다. 우리 사회에 플러스가 되는 시니어가 되어보자. 우리나라에는 평생교육원(노인대학)이 많다. 프로그램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노래하고 춤추고 시니어들의 입맛에 이끌리는 교육이 아니라 국제화 프로그램으로 바꾸자.

시니어 문화를 바꿀 시니어 사관학교를 세우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여기에서 시니어 사회를 이끌 일꾼들을 양성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년퇴직한 석학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 사회를 이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시니어 사회를 이끌 이야기꾼을 양성하자. 시니어 리더를 양성하여 전국 경로당에서 강연하도록 하자. 재미나는 역사와 문화를 강의하도록 하자. 책을 읽는 사회를 만들자. 유럽이나 일본을 가봐도 모두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맞아야 한다. 후손에게 값진 사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시니어들이 앞장서도록 하자.

우리는 아직 고스톱 문화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후손에게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어도 우리의 황혼을 보다 아름답게 물들여 후손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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