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능력주의의 오류에 대한 빈약한 경고

입력 2021-03-27 06:30:00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센델 글/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2020년)

공정하다는 착각-정종윤 제공
공정하다는 착각-정종윤 제공

공정은 사회 현상을 넘어 이제 시대정신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차별이나 불평등 논란이 벌어지는 현장에 어김없이 구세주처럼 소환되니 말이다. 하지만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지 않은가. 그의 한쪽 손에 쥐어진 칼날을 보며 우려했던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중요한 화두를 던졌던 센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눈을 가린 여신, 즉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공정의 결함에 대해 설파한다.

새 저서는 세계적인 유명세, 특히 한국에서 열광적인 명성을 안긴 '정의란 무엇인가'와는 다소 결이 다른 책이다. 앞선 책이 주로 딜레마 상황을 언급하며 명확한 결론을 유보하는 반면, '공정하다는 착각'은 분명한 논리와 결말을 전개한다. 특히 능력주의가 가진 위험성에 대해 센델은 무척 단호한 입장을 펼친다.

"능력에 따른 소득 불평등은 계층에 따른 소득 불평등보다 전혀 정의롭지 않다."(209쪽)

능력에 근거한 차등적 대우는 공정하다는 것이 상식일 터. 그런데 능력주의가 정의롭지 않다니 이 정치철학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상식에 위반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대안은 있기라도 한 것인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난감한 입장을 의식했는지 센델 또한 본인의 이론이라 고집하지 않고 선배 학자이자 정의론 대가인 롤스의 입을 빌려 간접적으로 주장을 펼친다.

핵심은 이렇다. 소득이 높은 것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지, 정의라는 덕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센델은 교사와 마약 상인의 소득을 이야기하면서 논의를 보강한다. 마약 딜러가 훨씬 많은 돈을 벌지만 교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장 수요에 맞추어 높은 소득을 올리는 능력은 공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가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심각한 오류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빈부 격차를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양극화는 능력주의의 필연적 결말이다. 얼핏 꼰대 철학자의 진부한 훈계 같지만 능력주의의 순진한 확신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이야기는 흘려듣기 어렵다.

빈부 격차가 능력주의 자체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는 센델의 논의는 일리가 있다. 대안으로 제시한 공동체주의와 시민들의 연대도 수긍은 간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이루냐는 것. 능력주의가 도덕적 결함을 가진다 한들 중세와 같은 계급 사회로 회귀하거나 고대 아테네 시대처럼 제비뽑기로 지도자를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조적 문제를 도덕적 문제로 환원시킨 빈약한 논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사용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인류문명이 플라스틱을 당장 포기할 기미를 찾기도 어렵다.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는 구조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토록 많은 논란과 후폭풍을 일으켰지만 아직 우리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은 애덤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를 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언제쯤 이상향의 청사진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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