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인공지능과 흙

입력 2021-03-27 06:30:00

흙은 삼라만상에 퍼져 있는 모든 물질의 대명사

인공지능과 흙/ 김동훈 지음/ 민음사 펴냄

대구가톨릭대병원의 인공지능
대구가톨릭대병원의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로지' 활용 진료 모습. 매일신문 DB

제목만 훑어봐서는 상식적으로 '인공지능'과 '흙'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어 보인다. 저자는 무얼 말하려고 이런 책명을 썼을까? 부제는 '상상을 현실화하는 인문적 감각을 키우기 위하여'란다. 호기심에 책을 집어 들었다.

'흙은 삼라만상에 퍼져 있는 모든 물질의 대명사다'라고 시작하는 서문을 보면 요즘 가장 트렌디한 용어인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장치들조차 또한 물질이므로 인공지능과 흙의 상관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논조를 펴면서, 모두 30개의 주제를 갖고 흙이 주는 상상이 인공지능과 같은 현실의 물질로 어떻게 변신해가는 지를 추적하고 있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간은 소우주다'는 장에서는 다빈치가 그린 유명한 '비트루비우스 인체도'가 나온다. 신체 구조가 우주 구조까지 반영한다는 사실을 원과 사각형 안에 사람을 그려넣음으로써 '인간 소우주론'을 확장하고 있다.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서양 창조론에 근거하면 물질인 육체탐구는 곧 사물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자기인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요즘 여성들이 많이 쓰는 '마스크 팩'은 중세 이후 주성분이 납인 화장품의 독성으로 인해 피부가 검게 괴사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물질을 찾아내 얼굴에 덮기 시작한 게 그 시초다. 이는 납중독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자 열망이었다.

'사이보그'장은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과 함께 변화하면서 상호작용을 통해 공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안경, 임플란트, 보청기, 귀걸이 등이 내 몸에서 이물감이 없다면 이 또한 기계적 물질과 나의 육체가 공진화하고 있는 증거는 아닐까?

'바이러스와 공생'장은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에서 시사되는 바가 더욱 크다. 어쩌면 바이러스가 숙주를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상에 개체수가 가장 많은 조류는 닭인데 바이러스는 인간의 몸에 들어와 인간의 식성을 조종해 닭고기를 좋아하게 변화시킨다는 대목은 등줄기가 섬뜩해진다.

지구상에 생물이 출현한 이래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그 멸종으로 생물종 75% 이상을 잃었다. 현재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겪으며 그 유력한 용의자가 인류로 지목된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이르러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물질로 눈을 돌리자는 '신유물론'을 주창한다. 38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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