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용버들을 심은 까닭

입력 2021-03-23 05:00:00 수정 2021-03-23 06:07:46

대구 수성구 연호지구 내 작은 크기의 묘목이 심겨진 모습. 매일신문DB
대구 수성구 연호지구 내 작은 크기의 묘목이 심겨진 모습. 매일신문DB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수도권 3기 신도시 인접 지역에 땅과 주택을 소유한 공직자에 대한 정부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44명에 이어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공기업 직원 237명의 명단이 특별수사본부에 넘겨졌다. 이들이 실제 투기를 했는지는 조사가 모두 끝나야 밝혀질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 관심사는 공직을 더럽히고 국민을 기만한 독직(瀆職) 행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 후속 조치다.

신도시나 산업단지 등 공공개발 예정지에 왜 용버들이 풍문보다 먼저 똬리를 틀고, 비닐하우스나 '벌집'이 지천인지 그 이유는 뻔하다. '보상비가 몇 배나 뛰고, 투기를 해도 별 탈이 없더라'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그 학습자가 개발 정보에 밝은 공직자라면 이는 공직 기강과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범죄다. 이는 단지 개인의 일탈을 뛰어넘어 법과 제도의 불신과 가치의 붕괴를 뜻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그 사회의 가치와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다. 만약 법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제도가 허술하면 그 사회는 계속 유지될 수 없다. 뿌리가 썩으면 잎이 말라 들어가고 이내 둥치마저 허약해져 결국 나무가 죽어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법과 제도의 빈틈을 파고드는 인간들의 욕심이 결국 사회를 도탄에 빠뜨리고 파국을 부르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투기 행위가 은밀하고도 대담하게 벌어졌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 국토부, 감사원 그 어느 곳도 이를 감시하고 감독하지 않았다. 이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그만큼 만연하면서 사회 전체가 부정과 비리에 무감각해진 것일 수도 있다. 배경이 무엇이든 국민을 속이고 실망시켰다는 점에서 투기자에 대한 엄한 처벌은 불가피하다. 국리민복은 고사하고 공공정보를 빼돌려 제 잇속을 챙기는 데 '열일하느라 바쁜' 공직자들을 모두 솎아 내야 하는 이유다.

뒤늦게 여당과 정부가 투기 사태 재발을 막는다며 모든 공직자를 대상으로 재산등록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현행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등 22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에 공무원 사회에서 '과도한 조치'라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투기자 처벌과 범죄 수익금 환수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법을 개정해도 소급 적용은 어렵다'거나 'LH 해체적 개편은 결국 1990년대로의 회귀'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혁신에 대한 국민 의지를 우롱하는 것이다.

물론 법의 소급 적용을 통한 처벌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을 속이고 공직을 더럽힌 투기자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과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과 같은 장치를 만들어서라도 제대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 정책이 특정인의 배를 불리는 밑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국민은 '고까워서' 투기자들을 비난하고 욕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해온 짓이 천만부당하고 국가 기강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공직 윤리를 저버린 일부 사람들이 일으킨 참사이지만 법과 제도의 허점 등 잘못된 구조가 그 토양이다. 개발 붐이 일었던 1970, 80년대부터 생긴 고름을 완전히 짜내지 않고 대충 들기름이나 바르고 넘긴 탓에 똑같은 사태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내기하듯 용버들을 심고는 팔짱을 낀 채 흐뭇해하는 장면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전 국토가 투기판이 되기 전에 그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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