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끝나지 않는 상처] 조손가정, 아동양육시설 학폭 피해 아이들은 사각지대

입력 2021-03-21 19:13:12

'부모 없다', '부모가 버렸다'는 놀림으로 학교폭력 피해 입어
변호사까지 대동하는 요즘 학폭위, 조부모들 대응 쉽지 않아
'시설 아동'이라는 놀림에 싸워, 가해자되는 양육시설 아동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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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없는 XX. 너 같은 X은 함부로 해도 돼."

부모님의 맞벌이로 할머니와 함께 사는 A(10) 양은 같은 반 친구가 던진 책에 맞았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가 놀림거리가 된 것이다. A양은 2년 가까이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홀로 해결이 어려웠던 할머니는 A양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고, "부모가 있으니 놀리지 말라"고 가해 학생을 수없이 타일렀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조손가정, 아동양육시설의 아동들이 학교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데다 보호자의 관심이 떨어질 경우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는 것이다.

대구의 대다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 위원에 따르면 실제 조손가정이나 양육시설의 아동들에 대한 학교폭력이 빈번할 뿐만 아니라 학폭위가 진행돼도 조부모나 양육시설 보호자가 참석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의 한 학교 학폭위 관계자는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놀림받는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며 "'내 아이의 일'이라면 피해자나 가해자 측 부모 모두 불같이 덤벼드는데 조손가정이나 양육시설의 학생의 경우 이들을 적극 보호해줄 사람들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학폭위가 열려도 조부모나 양육시설 보호자가 자리하는 경우는 잘 없다. 두 팔 걷고 나서는 적극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조손가정의 경우 학폭위에 대한 이해가 어렵고, 인식의 차이로 학교폭력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의 한 청소년상담센터 관계자는 "요즘 학폭위의 경우 가해 학생 부모들이 변호사까지 대동하는 경우가 많아 학폭위 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조부모들이 맞대응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또 학교 측에서도 이해가 충분히 되도록 전달을 해주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또한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형편이 좋지 않아 손주 교육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드물기에 피해 학생은 홀로 모든 걸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했다.

양육시설 아동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시설의 경우 돌봄 선생님 한 명 당 돌봐야 하는 아동들이 많기 때문에 아동의 피해 사실을 관심 가지지 않는 이상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구조다.

또 양육시설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잦다. '시설 아동'이라는 놀림에 친구를 때리는 일이 더러 있다. 이럴 경우 시설 아동은 피해 아동 측의 병원비나 보상 요구에 대응을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구의 한 아동보호시설 관계자는 "시설 아이들은 학폭위에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로 가는 경우가 많다. 계속되는 친구들의 놀림을 참지 못해 한 대 때리는 것이다. 우리 시설의 아이의 폭행으로 상대 아이의 이가 부러진 경우가 있었는데 보상금을 누가 지불해야 할지를 두고 난감했다"며 "시설에 들어오는 기부금으로 사용할 수도 없기에 결국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모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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