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걷다, 먹다] 25. 경북도청 신도시, 그리고 천년 숲

입력 2021-03-20 06:00:00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사진: 천년 숲 사이로 보이는 경북도청
사진: 천년 숲 사이로 보이는 경북도청

25번째 이야기. 도청신도시 천년 숲과 검무산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직한 후 예순 두 살의 나이로 배낭을 매고 길을 떠났다. 베르나르는 책을 쓰거나 취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길을 떠났고 끝없이 두 발로 걸었다.

그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걸어간 1099일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나는 걷는다>였다.

2000년대 초반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퇴직하면 베이징에서 이스탄불까지 베르나르의 여정을 거슬러 걷겠노라 결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제주 올레길도 허락하지 않았다.

안동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수시로 혹은 짬을 내서 안동을 마음껏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걷기 좋은 계절, 봄이다. 지금 걷지 않으면 땡볕을 견디기 어려워서 걷기가 힘들어지는 여름이 금방 올 것이다.

점심을 먹고나면 졸립기 시작했고 졸음을 쫓기 위해 강변으로 나갔다. 늘 낙동강을 따라 걷다가 오늘은 경북도청이 들어선 신도시로 갔다. 그곳에는 신청사뿐 아니라 천혜의 검무산과 천년 숲이 있다.

사진: 도청 정문인 솟을삼문 경화문
사진: 도청 정문인 솟을삼문 경화문

사진 :경북도청 전경
사진 :경북도청 전경

경상북도에서 대구시가 직할시로 분리되면서 대구시까지 관할하고 있던 '경상북도' 청사는 엉겁결에 남의 땅에 있는 손님이 되어버렸다. 경북도청의 경북 이전은 그래서 추진되기 시작했고 도청이 이전하면 낙후된 경북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처럼 보였지만 안동은 도청이 들어서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변화가 없다. 안동과 예천 사이 '신도시'가 들어선 것 외에는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경북도청 신청사는 우여곡절 끝에 2016년 3월 10일 공식 개청했다. 검무산 아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길지(吉地) 풍수를 바탕으로 자리잡은 신청사는 전통 한옥 구조의 웅장한 건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칭송이 자자할 정도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청와대나 경복궁 같은 조선시대 궁궐보다도 낫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신청사를 감싸안은 검무산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하회마을을 휘돌아 도는 낙동강이 청사 앞을 흐르는 전형적인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의 풍수명당이다. 신도시에 가서 도청 신청사를 바라보고 해발 332m의 검무산에 올라 신청사와 신도시를 내려다보니 '과연 기가 막히게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도청 신청사는 걷기에 좋았다.

공공기관이나 관공서답지 않게 아예 담장이 없다. 신청사 정문인 솟을삼문 '경화문'(慶和門)에서부터 새마을광장, 긴 회랑에 이어 본청인 안민관으로 이어지는 도청 경내는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해도 좋을 정도로 탁 트여 있어서 '개방'과 '소통'이라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와 딱 들어맞았다.

사진 경주 계림을 떠올리게 한 천년 숲의 소나무 숲
사진 경주 계림을 떠올리게 한 천년 숲의 소나무 숲

천년 숲

사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아무리 으리으리하고 좋다고 한들 관공서 경내를 구경다니는 건 별로다. 그러나 신청사 정문 바로 앞에 조성된 '천년숲'은 다르다. 봄이 시작되는 요즘에는 아직 푸르른 숲의 원래 모습이 조금 부족해보이지만 천년 숲은 '신라 천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경주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 울창한 '계림'을 떠올리게 했다.

도청 신청사를 중심으로 왼쪽에 조성된 아파트 등의 주거와 정주시설들은 아직 건설 중인 것처럼 어설퍼 보였어도 천년 숲은 신청사가 들어서기 오래 전, 아마도 천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숲처럼 자연스러웠다.

어디서 옮겨 심었는지 모르지만 수백 년은 족히 됐을 것 같은 소나무를 옮겨 심어 조성된 소나무 숲은 편안했다. '천년 숲'은 신청사 이전을 시작으로 새로운 천년의 역사와 시간을 담을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한 경북도청 신청사 이전을 기념하는 공원이었다.

천년 숲 입구에는 '산림부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외부사업으로 등록된 숲으로 연간 65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후손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조성된 건강한 숲'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었다.

사진 : 천년 숲에 조성된 황토족욕장과 황톳길
사진: 천년지 능수버들에 물이 꼭대기까지 올랐다.
사진 : 천년 숲에 조성된 황토족욕장과 황톳길

경화문 앞 도로를 가로질러 천년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황토 족욕장'과 황톳길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황토족욕장은 난생 처음이다. 신발과 양말을 차례로 벗고 어린아이처럼 황토에 발을 씻어내고 싶은 욕망을 느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아직 아침 저녁 기온이 서늘해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봄이 완연해지면 너도나도 족욕장에서 황토 족욕 러시가 이뤄질 것 같다.

족욕장 바로 앞에 세족시설도 다 마련돼 있다. 족욕장 바로 앞에는 맨발로 걸으라는 황톳길이 100여m 정도 조성돼있다. 천년 숲에서는 발이 호강하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하루정도라도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황토 족욕을 할 수 있다면 발 건강엔 최고가 아닐까.

천년 숲 남쪽에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과 마사길, 지압보도 등이 마련돼 있다. ​느티나무 쉼터 쪽이다.

언덕길로 올라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노라면 여기가 신도시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마치 깊은 산 휴양림에 온 듯한 기분으로 걷다 보면 소나무 사이로 작은 연못 하나가 보인다. '천년지'다. 천년을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이 숲도, 이 연못도 천년 후에도 영속하길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담았다.

사진 : 검무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청과 신도시 전경
사진: 천년지 능수버들에 물이 꼭대기까지 올랐다.

연못 주위에는 능수버들이 주렁주렁 늘어져있다. 며칠 사이 파릇파릇 능수버들 새잎들이 솟아난 모양이다. 말 그대로 '물이 올랐다'. 중국 황사가 오고 봄비가 내리면서 주체할 수 없는 봄기운이 능수버들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왔다.

천년지는 어쩌면 또 다른 비밀의 숲일 수도 있다. 어스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 갔을 때 천년지는 새벽안개로 가득했다. 그래선가 마치 안동댐 아래에서 만난 그 '낙강물길공원', 비밀의 정원을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봄이 오고 녹음이 우거진 어느 날 새벽 나는 다시 '비밀의 숲' 같은 천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안동과 예천의 경계 지역인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에 걸쳐 조성된 도청신도시 인구는 2020년 연말을 기점으로 2만 명을 훌쩍 넘었다. 도청이 이전한 2016년 3천67명, 2017년 8천63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증가세다.

주민등록상으로는 40대 이하 인구가 81.1%에 이르고 주민의 평균연령 32.5세로 경북도내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그래서 초등학교 2개소에 중학교 고등학교가 각각 1개소로 정주하는 신도시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신도시 주민들의 다수는 도청과 신도시에 입주한 공공기관 직원 가족들이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 검무산이다. 검무산과 천년 숲은 신도시 주민들에게는 자연의 선물같은 존재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사진 : 검무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청과 신도시 전경

검무산을 올랐다.

해발 300여m 남짓한 산은 가볍게 산행하기에 적당하다. 검무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복장은 가볍다. 마트에 갔다가 혹은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경북도청 본청 바로 뒤쪽으로는 검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두 곳이 있다. 등산로 초입에 자리한 '관풍루'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관풍루 옆에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해 문을 연 '마음 한쪽 정원'이 있다. 예천이 고향인 안도현 시인이 이름을 지은 이 정원은 주목나무를 병풍처럼 겹겹이 심었고, 안쪽에는 측백나무와 사철나무로 4개 구역을 구분, 직원들과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내 집의 뜰처럼 여기고 산책하면서 마음 한쪽에 담아두는' 정원이다. 그냥 편안하게 걸었다.

정원을 뒤로 하고 산으로 향했다. 산길은 평탄했고 잘 정돈돼 있다. 중간 중간 오르막이 있어 그다지 긴 등산로가 아닌데도 적당한 운동감이 든다. 정상으로 오르는 고비는 나무 계단이다. 정상은 게으름 피지 않고 쉬지 않고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깨닫게 하는 기나긴 계단이다.

드디어 정상이다. 검무산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발 아래로 도청 신청사며 도의회 그리고 도교육청이 보였고 멀리로 하회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 줄기와 시루봉(안산)과 봉화산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으로는 아파트군락이 보인다.

신도시 주변으로는 검무산 산행코스를 비롯한 다양한 둘레길이 조성돼있다. 천년 숲에서 검무산으로 이어지는 제1코스를 비롯, 풍천면사무소를 거쳐 하회마을과 부용대까지 둘러볼 수 있는 제3코스, 구담정사에서 '말 무덤'을 거쳐 선몽대, 호명면 사무소로 이어지는 제4코스 등 무려 7개의 둘레길이 있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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