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예술 속 사투리-7.사투리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
2.예술속 사투리
7)사투리 영화 속 다양한 캐릭터
◆사투리는 어머니 배 속에서 익힌 언어
"어잣측에 봐꾸만."
'어제 아침에 봤구만'이란 대사다. '어제 아침에'를 '어잣측에'라고 발음할 수 있는 배우는 몇이나 될까. 요즘 같으면 자막이라도 달아야 할 대구 사투리다.
십 수 년 전 듣고 깜짝 놀란 배우 신충식(78)씨의 대사였다. 이 표현은 대구에 살지 않았던 사람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고난도의 사투리다. 찾아보니 신충식 배우는 고령 출신으로 경북대 수의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MBC 3기 공채 성우로 데뷔했으니, 발성법이나 대사 구사력은 최강인 배우였다.
사투리를 다른 말로 '탯말'이라고도 한다. 어머니 배 속에서 익힌 언어로 그 지역 사투리의 DNA를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을 뜻한다. 표준어를 열심히 연마해도, 위급할 때 사투리가 튀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정체불명의 사투리
사투리 영화나 드라마의 좋은 캐릭터는 대부분 그 지역 출신 배우에게서 나온다.
원빈 주연의 '우리 형'(2004) 엄마 역을 맡은 김해숙씨는 부산 출신으로,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물 흘러가듯 부드러운 톤에 강약의 흐름까지 타는 사투리 악센트, 단연 압권이었다.
지역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지역 출신이 아닌 배우를 기용했다가 원성을 산 경우도 있다. 김상진 감독의 '신라의 달밤'(2001)이다. 이 영화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제작진과 출연진들이 다시 의기투합해 만든 영화다. 고교 졸업 10년 후 학교의 '전설의 짱'은 다혈질의 체육교사가 되어 있고, 소심한 모범생이자 '왕따'는 앨리트 깡패가 되어 다시 만나 으르렁대는 스토리다. 깡패 같은 선생과 선생 같은 깡패의 맞대결이 콘셉트이다.
제목처럼 배경이 신라의 땅, 경주이다. 그런데 주인공인 차승원, 이성재를 비롯해 이종수, 이원종, 성지루, 유해진 등 주요 배역의 배우가 전부 서울, 충청 등 타 지역 출신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다들 경상도 사투리를 하지만, 모두가 어색한, 정체불명의 사투리가 난무하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한 지역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지역 배우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더 희한한 캐스팅이었다. 다만 충청도 출신인 이원종 배우만 제대로 된 경북 사투리를 구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한 사람 배우 김혜수. 그녀는 조폭이 된 모범생과 교사가 된 깡패, 둘의 사랑을 받는 분식집 주인 민주란 역으로 출연했다. 수수한 화장에 긴 생머리, 귀여운 경상도 사투리까지. 비록 부산 출신으로 그녀 역시 대구 사투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름 캐릭터로는 성공적이어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 영화 '보안관',경상도 출신 배우 대거 기용
반대로 이성민 주연의 '보안관'(2016)은 경상도 출신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부산 기장을 무대로 코믹 액션을 선보였다. 과잉 수사로 낙향한 전직 형사 대호(이성민)가 보안관을 자처하며 고향을 마약 범죄자로 부터 구한다는 이야기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각 캐릭터를 잘 살렸다는 평을 들었는데, 그 이유가 모두 경상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김형주 감독은 부산 북구 구포 출신이며, 이성민은 경북 봉화, 조진웅은 부산, 김성균은 대구 출신이다.
이성민 배우는 대구에서 10년간 극단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니가 뭐를 잘못했는지 모르겠나?", "그게 가장 큰 잘못인 기라", "이기 클라스라는 기다" 등의 대사로 물불 가리지 않고 끈질긴 경상도 사내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성한 감독의 '바람'(2009)은 10대의 질풍노도를 잘 그려낸 영화였다. 교사들의 폭력과 학생들 간의 세력 다툼 등 일찍 배운 약육강식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폼 나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은 짱구(정우)도 그 속에 휩쓸린다.
짱구는 겉으로는 어른들을 흉내 내지만, 속은 여전히 여린 18세 소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서 "아빠, 미안하다!"며 꺼이꺼이 우는 장면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다. 삶의 아픔을 너무 일찍 경험한 짱구의 성장기였다.
◆전국 사투리가 모두 등장한 '응답하라 1988'
부산 출신인 배우 정우는 이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부산사투리를 쓰는 의대생 캐릭터로 나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응답하라 1988'은 전국 사투리가 모두 등장해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삶의 애환을 잘 그려낸 드라마였다.
특히 엄마 역으로 나온 배우 이일화씨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엄마가 이번에 갈 때 메르치(멸치) 좀 뽀까주까?", "현주라 카는 아는 어떻노. 가(그 애) 안 별스럽나", "엄마가 마 그거 자꾸 잊아뿐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남편 성동일의 전라도 사투리와 환상의 콤비를 선보였다. 이일화씨는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부산에서 보내, 누구보다 경북과 경남 사투리에 능통한 배우 중 하나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고경표) 엄마로 출연한 김선영 배우는 일찍 남편을 잃고, 가난하지만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착한 엄마로 나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지난 1월에 개봉한 영화 '세자매'에서는 첫째 희숙역을 맡았다. 항상 웃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는 캐릭터다. 무관심하며 돈만 뺏어가는 남편과 막되 먹은 딸에게도 말 한마디로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간다.
두 캐릭터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특히 김선영 배우의 나지막한 경상도 사투리가 아픔을 속으로 삼키며 살아가는 캐릭터를 더욱 섬세하게 표현해주었다. 그녀의 사투리 연기는 시장이나 버스 등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어서 더욱 정감이 가는 캐릭터였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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