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커다란, 그리고 훌륭한 야외 공연장

입력 2021-03-15 11:35:46

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영농방식이 기계화되기 전만 해도 농촌 들녘에서는 농요를 들을 수 있었다. 농요는 농사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로 유희요나 의식요와 달리 고된 노동의 시름을 달래기 위한 기능이 있다. 전문 소리꾼을 통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통속민요에 비해 농요는 지역 농사꾼에 의해 구비 전승되어 온 토속민요에 속한다. 또 권역에 따라 서도민요, 경기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제주민요로 구분한다.

동부민요 권역에 속하는 경상도 민요는 함경도, 강원도와 함께 메나리토리의 음악적 특성을 갖는다. 메나리토리의 음계 구성은 상행할 때 '미라도레'이며 하행할 때 '솔'음이 첨가되어 '레도라솔미'가 되는데 소리가 매우 구성지며 한탄조의 느낌을 준다. 지역마다 말씨가 다르듯 민요에도 권역별 다른 음계를 사용하거나 시김새와 요성(떠는 음), 소리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경상도 사람들이 서울말을 잘하기 힘들 듯 경상도 사람들이 경기지역이나 남도지역 민요를 잘 부르기가 쉽지 않다. 경상도 사람들이 경상도 민요를 제일 잘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대구와 경상지역 민요 전수소에서는 대부분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전수하고 있다. 그 까닭은 통속화된 경기민요나 서도민요가 음악적으로 활달하고 경쾌할 뿐 아니라 노래를 불러도 맛깔스럽기 때문이다.

영남지역 농요에는 보리타작할 때 도리깨질을 하면서 부르는 '옹헤야'와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칭칭이(치나칭칭나네)'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영남 각 지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토속민요가 셀 수 없이 많다. 지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몇몇 곳을 지정하여 무형문화재로 보존‧전승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농사 현장에서 들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천 통명농요의 경우 모심기소리 '아부레이수나'와 논매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캥마쿵쿵노세' 등은 독특한 방언과 음악구성으로 인기를 독차지 한다. 경북무형문화재로 안동 저전농요, 예천 공처농요, 상주민요, 구미 발갱이들소리, 자인 계정들소리, 문경 모전들소리, 그리고 대구시무형문화재로 공산농요, 달성 하빈들소리가 지정되어 있다.

경상지역 머슴들의 신세 한탄소리 '어사용'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애절하다. 나무를 하거나 꼴을 베기 위해 깊은 산속에 홀로 들어간 머슴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갈까마귀와 주고받는다.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에 이름하며 살건마는 니 날 적에 내가 나고 내 날 적에 너도 났는데 이내 팔자가 와 이렇노"

모심기 철이 되면 하빈 들녘에서는 '모심기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야~ 모야~ 노랑 모야~ 언제 커서 열매 열래"를 선창자가 부르는 동안 허리를 구푸려 모를 심고 "이 달 가고 저 달 커서 내 훗달에 열매 열래"를 다함께 후창하면서 구푸렸던 허리를 편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때가 되면 하빈 들녘뿐 아니라 모판이 펼쳐진 온 들판에는 농사꾼들의 우렁찬 들소리가 메아리쳤다. 들판마다 천장 없는 커다란, 그리고 훌륭한 야외 공연장이 되었다.

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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