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대학 신입생과 젊음

입력 2021-03-13 05:00:00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내가 대구경북권 대학에서 강의할 때 매년 1학년 신입생 수업을 할 때면 늘 빠트리지 않고 강의하는 내용이 있었다. 한 달을 4주로 나눠 첫 주말에는 삼삼오오 친한 친구들끼리 짝을 지어 대구 시내 번화가인 동성로나 백화점, 패션 거리인 야시골목, 박물관, 화랑, 문예회관, 영화관 등을 구경하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둘째 주는 역시 친구끼리 짝을 맞춰 대구역에서 완행 기차를 타고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에 가서 소위 명문대 캠퍼스를 구경하고 혹여 학술세미나나 유명인 강연이 있으면 참여도 해 보고 고교 때 친구도 만나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서울의 인사동, 북촌, 익선동이나 대학로, 신촌, 홍대거리 같은 전통과 현대의 문화가 공존하는 거리를 다녀보고, 고궁, 박물관, 미술관, 강남의 현대 거리 등을 미친 듯이 쏘다녀 보라고 한다.

셋째 주에는 토요일 아침 일찍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싸서 전공책 이외의 문·사·철이나 시사 관련 책만 들고 학교에 등교해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토·일요일 이틀 동안 다른 짓 하지 말고 눈알이 시리게 독서를 하라고 한다. 마지막 넷째 주말에는 시골에 가서 부모님 농사일을 돕거나 슈퍼 가게를 봐주거나, 아니면 부모님과 손을 잡고 동네 뒷산이나 강가를 도는 산책을 하면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하라고 한다.

이런 말끝에 나는 혹시 귀신을 본 학생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혹시 여러분 머릿속에 서울의 S대는 대단하고 우리 대학은 그저 그렇다, 의사와 변호사, 대기업은 대단하고 월급쟁이나 노동자는 그저 그렇다는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묻고는,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여러분은 지금 귀신에 홀려 있다고 말한다. 귀신은 여고 화장실이나 공동묘지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여러분의 생각이나 태도야말로 귀신에 홀린 것이라고 말해준다.

우리 선조들은 젊은이들에게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돌아다녀라'(萬卷書讀 萬里行)라고 가르친 바 있다. 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만 리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고 배우라는 뜻일 것이다.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가 젊음을 얻기 위해 영혼을 걸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하는 광경은 유명한 고전적 장면이다. 영혼을 걸고 쟁취해야 하는 게 젊음인 것이다.

대학 1년 신입생들에게는 대학생다운 정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젊음이다. 기존의 낡고 오래된 가치를 허물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의 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존의 수직적 서열주의, 연고주의, 배타성과 같은 낡은 이데올로기를 깨고 연대와 관용과 평등과 소수자나 약자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정신이야말로 젊음인 것이다.

나는 의성군 단촌에서 태어나 안동과 대구에서 중등, 대학교까지 쭉 다니고 직장 생활도 대구와 경북에서만 보낸 말하자면 정통 TK 출신이다. 그런 내가 환갑이 다 돼 갈 무렵 직장 따라 서울에 옮겨와 햇수로 5년째 서울서 보내고 있다. 그간 내가 만나 본 서울 사람들은 눈과 마음이 바깥 세상,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글로벌 마인드이다.

내 고향 TK는 어떤가? 한때 한국 사회를 이끌었던 큰 집안의 장자와 같던 의젓함과 대인다운 풍모의 그 빛났던 관용 정신과 태도는 어디로 가고 현재는 음침하고 습한 배타적 연고주의, 서열주의, 복고주의와 같은 낡은 이데올로기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솔직히 걱정될 때가 많다. 대학 신입생 같은 팔팔하고 젊은 청춘의 도시 대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마음을 열어 바깥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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