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금성과 화성에서 지구를 본다면

입력 2021-03-09 11:55:54

전헌호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인류가 금성에서 지구를 바라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곳에 도착하여 살아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화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으니, 상상의 나래를 펴서 조금 이야기해 보고 싶다.

금성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여기서 화성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두터운 구름으로 둘러싸여 하얀색인 금성이나 산화철로 뒤덮여 붉은색인 화성과는 달리 지구는 푸른색이다. 금성에서는 한밤중에도 지구를 볼 수 있다. 지구가 금성 바깥 궤도에서 태양을 돌고 있기 때문이다. 화성에서는 지구에서 금성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초저녁이나 새벽에만 볼 수 있다. 화성 안쪽 궤도에서 돌기 때문이다.

금성이나 화성에서 엄청나게 좋은 망원경으로 지구의 표면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볼 수 있다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땅, 물, 공기, 햇빛 등이 어우러져 살려내는 생명체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할 것이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면밀하게 유지되는 지구생태계! 왜 여기에 태어남과 죽음이 있는지, 왜 생로병사, 생자필멸의 원리에 예외가 없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금성이나 화성에서 보면, 지구표면의 79억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이상적으로 여겨질까? 필자가 지금 종교칼럼을 쓰는 중이니 상상의 범위를 좁혀서 종교적 현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할 이야기들이 천일의 야화처럼 많을 것이다.

지구에 이렇게도 많은 종류의 종교들과 종교단체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먼저 놀랍게 여겨질 것 같다. 이어서 '도대체 종교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저다지도 많이 존재할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저 많은 종교들과 종교단체들이 무엇을 하자는 것이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물음도 강하게 일어날 것이다.

오래 전 우리 학교 생물학과 교수 한 분이 좁은 승용차 안에 함께하게 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기세로 "신부님, 도대체 교회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제법 열성적인 개신교 신자였기에 즉시 '이 질문은 예사로운 질문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교리를 가르치듯이 일반적인 교회론을 이야기해서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승용차 안에는 나보다 많이 선배인 총장신부가 함께하고 있었다. 이쪽저쪽을 고려해가며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총장신부님께 질문할 것이지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이런 다소 원망의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대답하기까지 시간을 오래 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교수님, 교회를 계모임으로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고 질문한 교수도, 함께 들은 총장신부도 침묵했다. 나도 침묵했다. 더 이상 긴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공감했던 것 같다.

지구촌의 각 종교들이 나름대로 고유한 세계관을 갖고 있고 자기 종교에 대해 가르칠 것이 많아서 서로의 차이점들에 주목한다면 참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고 멀어지고 심하면 다투기까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로 안에 든 긍정적인 면과 공통점에 주목한다면 많은 것을 발견하여 활발한 대화와 더불어 친밀감을 느끼고 종교간 평화가 정착되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어지는 종교칼럼에서는 종교간 대화와 종교자유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전개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이 흥미를 느낀다면 여러 차례 진행할 것이고 지루해 한다면 주제를 바꿀 것이다.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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