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김명찬 사회적기업 '정주하우징' 대표

입력 2021-03-04 14:20:19 수정 2021-03-04 17:17:55

건설사 임원 퇴직 후 창업, 경영자 겸 현장 인부
인생 3막 남 위해 살려고 저소득층 집 무상 수리
주민들에게 집 고치는 기술도 교육 "새로운 사회적기업 탄생하길"

사회적기업
사회적기업 '정주하우징'의 김명찬 대표가 3일 대구 북구 침산동 한 노후주택에서 무상수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공사를 하다 보면 벽을 깨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벽 뒤에 무엇이 있을지 두렵다고 부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묵묵히 일하다 보면 성공은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사회적기업인 정주하우징의 김명찬(62) 대표는 기업체에서 퇴직한 뒤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손가락에는 건설사 임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없었던 상처가 수두룩하다. 2018년 퇴직금을 밑천 삼아 설립한 회사에서 그는 경영자이자 현장 인부이다.

"직장을 그만두고서 직접 회사를 차렸죠.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아내랑 손잡고 여행 다닌다고 더 행복할 것 같진 않습니다. 허허허."

정주하우징은 주택 수리가 주요 사업이다. 그러나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예쁘고 멋진 저택들과는 거리가 멀다. 금방 쓰러질 듯 해도 한 가정의 보금자리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고쳐주는 일이다.

비 새는 지붕을 손보고, 뒤틀린 창틀과 낡은 전선을 교체해준다. 낡은 찬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재래식 부엌엔 싱크대를 설치해주고, 세월의 더께가 누렇게 앉은 벽지는 정성껏 새로 바른다. 지난해 폐건축자재와 소루쟁이, 여뀌 등 식물을 이용한 친환경 재생 건축자재(벽돌)로 특허까지 받은 김 대표는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도 꽤 쓸 만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수익은커녕 문 닫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매년 저소득층 10여 가구의 집을 무상으로 수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3막은 남을 위해 살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에서다.

"지인의 부탁으로 대구 대신동 한 할머니의 집을 재료비도 안되는 돈에 고쳐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암에 걸린 엄마에게 딸이 간 이식을 해줬다는 이야기에 저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로 했죠. 안타깝게도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셔서 남 몰래 울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는 집수리를 넘어 집 고치는 기술을 주민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스스로 뭔가를 성취하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자는 취지다. 올해는 대구 북구 침산동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두 달 동안 12차례에 걸쳐 난방설비·도배·목공 등을 교육하고 있다.

"도심 재생에 매년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주민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비록 전문가처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집을 고치면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교육을 받은 주민들이 뭉쳐 '마을 집수리단'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길 바랍니다."

대구 옛 도심의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훤하게 꿰는 김 대표에게 사실 대구는 전혀 연고가 없는 도시였다.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사회생활을 했다. 사연에는 외환위기 탓에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아픔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나가면 뭐든 할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포항에서 사업하는 친구를 찾아가 보름 동안 신세를 졌지만 끝내 같이 일 해보자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서울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들른 대구의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여기에서 재기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가 대구에서 처음 구한 일자리는 주택에 도시가스 시공을 권유하는 영업직이었다. 물론 낯선 도시에서의 인생 2막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수입은 겨우 끼니를 이을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처럼 열심히 발품 판 덕에 한 아파트단지의 계약을 따냈고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그때의 경험은 지난해부터 몰아닥친 코로나19 위기를 이겨내는 바탕이 되고 있다. 고용 한파에 내몰린 젊은 층의 채용을 위해 지난해 설립한 인터넷 쇼핑몰, 카페가 적자를 면하지 못하지만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전 직원과 제주도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직원 월급날이 다가오면 솔직히 겁부터 나고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그만둘까 고민한 게 한두 번이 아니죠. 그래도 아침에 눈 뜨면 할 일이 있고,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삼식이 소리 듣지 않는 게 어딥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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