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중요하다

입력 2021-03-06 06:30:00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마당 구석의 조그만 땅은 음식 쓰레기를 처치하는 공간이다. 따뜻한 날씨에는 1주일만 지나면 흔적도 없이 흙으로 변한다. 하지만 겨울은 땅이 딱딱하게 얼기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 언 땅은 곡괭이로 파도 쉽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다. 겨울 땅은 어떤 생명체도 허용하지 않는 죽음의 흙 같다. 그런데 겨울 끝자락이 되면 흙에 변화가 생긴다. 춥고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 흙도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흙은 부드러워지고 부피도 부풀어 오른다.

곡괭이의 강한 힘조차도 허용하지 않던 얼었던 흙이 부풀어 오르면 그 사이를 뚫고 연약한 식물의 새싹이 모습을 비춘다. 봄의 새싹은 아주 여리다. 너무나 신기해서 새싹을 관찰하려고 흙을 팠더니 그냥 부러질 정도로 약하다. 그런 연약한 새싹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비결은 강한 힘이 아니다. 그냥 힘으로 뚫고 올라오려고 한다면 새싹은 부러질 것이다. 연약한 새싹은 부드러워진 흙을 밀고 밖으로 나온다.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는 겨울이 지나면 점차 따뜻한 날과 추위가 반복된다. 시샘 추위라고도 하고 봄이 눈앞인데 웬 강추위가 몰아치느냐고 하지만 사실 땅속 생명체를 위한 흙의 준비 작업이다. 봄을 준비 중인 흙을 밟으면 새싹이 올라오는 데 방해를 줄까 봐서 조심스럽지만, 봄 흙을 밟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푹신한 카펫을 밟는 기분이다.

나는 유도 유단자였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이 유도의 핵심이다.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과 같이 쉽지 않다. 항상 힘이 들어간다. 이건 유도뿐만이 아니다. 모든 운동에서 귀가 따갑도록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끊임없는 반복 연습으로 동작의 패턴을 익혀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유도를 오래전에 해서 잊고 있었던 사실을 흙을 만지면서 매일 다시 명심하고 있다. 힘을 빼자. 부드러움을 유지하자.

이것은 몸과 마음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건강을 얘기할 때 항상 강함을 권유한다. 정신력을 강화해야 하고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중년이 넘으면 근육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물론 근육 강화가 중요하지만 50대가 넘으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이를 유지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 근육을 만들어 방송에 나오는 특수 상황에 속지 말자. 일반인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력도 군대의 유격훈련같이 한다고 단련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 가진 정신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려운 일을 따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사실 건강 유지에는 정신력, 근육 강화보다 균형 유지가 더 중요하다. 현대에 중요한 정신 건강은 느긋한 여유로움에서 온다. 긴장과 느긋함이 반복되는 삶에서 현대인은 긴장이 과도하게 많다.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 배워야 한다고 핸드폰을 켜고 남 이야기를 듣지 말자. 새로 배운다고 성공한 사람들을 전부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쉬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몸 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울퉁불퉁한 큰 근육이 아니라 평소 사용하지 않던 작은 근육들이다. 몸의 균형을 잡아 준다. 꾸준하게 작은 노력만 해도 발달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씹고, 앉을 때 똑바로 앉고 걸을 때 바른 자세로 한발 한발 내딛는 연습만으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 봄이다. 밖으로 나가 흙을 밟자. 신발을 벗고 맨발이면 더 좋다. 흙에서 올라오는 푹신한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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