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대유행 신속히 대응" 필요성 공감
사회적 약자 진료 문제 해결…감염병 확산 때는 병상 동원
타 도시들 앞다퉈 시설 확충
권영진 대구시장이 코로나19 1차 대유행 사태 1년 기자회견을 통해 제2대구의료원(이하 제2의료원) 추진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의료계와 복지계, 시민사회단체 등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감염병 확산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재 상황 속에서 안타까운 희생을 줄이기 위한 제2의료원 건립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현행 의료·복지 시스템의 개혁 없이는 제대로 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병원만 더 짓고 보자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구시의 추산에 따르면 제2의료원 건립에는 의료장비 등을 제외한 건설비만 2천억원이 들며, 매년 500억원 이상의 운영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의료 강화 필요
제2대구의료원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 말 대구의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급증하는 병상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환자들이 상당수 발생하면서부터다. 지난해 3월 초 2천300명의 환자가 집에서 대기해야 했고, 초기 사망자 75명 중 23%는 입원도 못하고 사망했다.
김동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경인의협) 회원은 "대구에서 유독 사망자가 많았던 것은 감염병 대유행과 같은 유사시 국가나 지자체가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상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말 기준 국내 전체 병원의 병상 중에서 공공병상 비중은 9.6%(6만1천779병상) 수준으로 인구 1천 명당 1.19개에 불과하다. 병원 중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5.5%(221곳)이다.
또 다른 필요성은 대구의료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사용되자 그동안 지역의 노숙인, 쪽방 주민,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진료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이다. 제2의료원 건립에 미온적 입장을 보여왔던 대구시가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꾼 가장 중요한 이유다.
여기에다 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지 않았던 타 도시들이 앞다퉈 공공의료기관 확충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대구시에 부담이 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대전·서부산의료원이 예비타당성 심사를 생략하고 건립을 확정했다. 진주·거창·통영·상주·영월·의정부는 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다. 부산(침례병원 인수)과 인천(제2의료원 설립), 울산, 광주, 세종, 제천단양, 김해(제2보험자병원 유치) 등도 공공의료기관 추진을 논의 중이다.
초고령화시대 국민 의료비 급증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공공의료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동은 대경인의협 회원은 "공공병원을 통해 진료의 표준을 제시함으로써 민간병원의 과잉진료와 의료비의 급증을 막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효율성보다 공공성 강화해야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제의 문제점은 '과도한 민간 의존이지, 병원이나 병상의 부족 상태는 아니다'라는 지적이 많다. 공공의료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만큼 민간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반면 대구의 병상수는 3만8천 개로 인구 1천 명당 병상수는 15.6개에 달해 전국 평균(2017년 기준 12.3개)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국적인 병상 수도 OECD 중 일본(13.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서울대 의과대학 코로나19 과학위원회는 지난해 4월 "인구 1천 명당 병상 수가 많은 나라일수록 코로나19 완치율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또 지난해 봄 대구의 1차 대유행 사태는 공공병원 몇 개를 대구에 더 짓는다고 해서 비극을 막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연말까지 집계를 봤을 때 국내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 중 1차 유행의 진앙지로 꼽힌 신천지가 5천213명(18.6%)로 단연 1위였다.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도 대구가 318.82명으로 서울(191.48명), 경기(107.36명), 인천(94.04명), 경북(90.18명)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대구시의사회는 "이런 엄청난 감염확산을 막을 만큼의 의료시설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민간과 공공 간 협치와 의료재난 컨트롤타워 마련, 사전 대응훈련 체계화 등을 통해 대응력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효과적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복지계는 의료원 추가 건립도 좋지만 선행과제로 의료 분야의 공공 전달체계 개선을 촉구했다. 저소득층 상당수가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만큼 '먼 곳에 있는 큰 병원'보다는 가깝게 진료받을 수 있는 거점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민철 대구시쪽방상담소장은 "물론 제2의료원도 필요하지만, 노숙자나 쪽방촌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병원을 오갈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다각도로 방법을 고민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사회복지사는 "어차피 중증환자는 대구의료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해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송된다. 이 과정에서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불법체류노동자나 난민 등은 대구의료원에서 받던 지원 혜택이 아예 사라지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이런 문제점들만 해결돼도 의료의 공공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말했다.
현재 의료보험 미가입 저소득층과 의료 소외계층에 대한 의료비와 간호·간병 서비스 비용 지원이 대구의료원에서만 가능하다.
대구의료원의 취약한 시설개선과 인력 처우개선부터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구의료원 한 의사는 "적자가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공공병원의 본분은 온데간데 없고 '경영효율성'이라는 잣대만 갖다대는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모순된 요구가 계속되는 한 아무리 근사한 제2의료원을 건립한들 공공성을 확보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구의료원은 의사 정원이 44명이지만 여러 차례 채용공고를 해도 33명 밖에 채우지 못할 만큼 임금과 복지 수준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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