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채 1천300만원이 있는데…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형세가 올 것입니다."(1907년 2월 21일 대구의 '국채 일천삼백만원 보상 취지') "부채가 1천300만환이나 되어 매년 이자가 장차 100만환… 채무가 높게 쌓여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청송의 대소 백성과 여러 군자들은… 사천여 년 이어온 기틀을 생각하고… 자손이 천만 년 편안하게 살 땅과 자산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1907년 3월 3일 청송군 국채보상회 심호택 회장의 '국채보상회 취지서')
1907년, 나랏빚이 눈덩이로 불어 1년 재정수입 1천400만원에 맞먹는 1천300만원에 이르렀다. 이에 이를 갚는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본격 불이 붙어 전국에 퍼졌다. 이를 위한 글과 호소도 이어졌다. 현재 대구의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확보한 자료와 기록물에는 당대 빚을 갚아 후손에 부담을 주지 말자는 내용의 절절한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전해진다.
당시 대구 사람은 실천 가능한 빚 갚는 방법을 제시했다. 5천만 일본인이 '집에 있는 백성은 신을 삼고 패물을 팔며, 여자는 지환(指環)을 모아 군비에 보태어' 마침내 청일·러일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금연(禁煙)으로 빚을 갚자고 했다. 즉 2천만 한국인이 담배를 끊고 한 달 담뱃값 20전(錢), 3개월 60전을 모으면 1천200만원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 경계와 달리 나라는 3년 만에 결국 문을 닫고 35년을 암흑으로 보냈다. 나랏빚의 악몽은 1997년 외환위기로 되살아났다. 100년 세월에 두 번이나 빚 소동을 재연한 어리석은 나라가 됐다. 사반세기 가까운 24년이 흐른 2021년 지금, 한국은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나랏빚 행진에 나서고 있다.
누가 갚을 빚인지 알 수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분명 가난한 국민의 몫이 될 터. 그런데 마침 23일 대구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통해 당시 사람들 생각을 살피는 행사가 열린다. 나라가 저지른 빚더미, 어차피 서민이 갚을 빚이니 후손에게 차마 짐이 되지 않게 빚 갚는 지혜라도 한 수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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