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특별법 정부? 특별법 당?

입력 2021-02-17 17:09:02 수정 2021-02-18 06:10:05

정욱진 정치부장

전남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1일 오후 순천시 덕연동 여순항쟁위령탑을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1일 오후 순천시 덕연동 여순항쟁위령탑을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욱진 정치부장
정욱진 정치부장

설 연휴를 앞둔 지난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을 방문한 것을 두고 야권에선 매표(買票)용 '특별법 나들이'로 불렀다. 이 대표가 1박 2일 일정으로 정치적 기반인 호남을 찾았는데, 가는 곳마다 '특별법'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마구 풀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찾은 전남 나주에서 '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 특별법'을, 이튿날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전남 순천 여순항쟁위령탑을 방문하고는 각각 지역 현안 법안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아특법), '여순사건특별법'의 국회 처리를 약속했다. 지난달 29일 부산 가덕도를 찾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의 2월 내 국회 통과를 공언한 것까지 치면 이 대표는 2주 새 영호남을 누비며 특별법 남발에 앞장선 셈이다. 민주당은 또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지역의 한 야권 인사는 "이 대표는 방문하는 지역마다 해당 지역의 최대 현안을 특별법으로 해결해 주겠다면서 약속을 하고 다녔다"며 "이들 특별법은 주로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과 제주, 4·7 보궐선거를 앞둔 부산 지역을 타깃으로 삼고 있어 표팔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민주당을 '특별법 당'으로 불러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특정 사안과 지역 개발이 담긴 특별법이 난무하는 것은 특별법에는 일반법을 초월한 우월적 지위가 있어 현안 해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당이 발의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법안에는 예비타당성 조사 등 사전 절차 면제 및 단축, 건설비용 보조를 위한 재정자금 융자, 사업 시행자에 대한 조세 감면과 자금 지원 등 각종 지원이 망라돼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가덕도 신공항은 다른 관련법의 제지 없이 전액 국비로 일시에 지어질 수 있다.

물론 풀리지 않는 지역 현안 해결과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돼 만들어진 특별법을 모두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법안의 문제는 어떤 규모로, 얼마를 들여 공항을 지으려는 건지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국회법상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의안을 발의할 때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곤 소요 비용에 관한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가 반드시 첨부돼야 한다. 그런데 '부산 가덕도에 들어서는 24시간 운영 가능한 관문 공항'이라는 선언적 규정만 있을 뿐 사업 규모·사업비 등 주요 사항이 모두 미정인 한마디로 '깜깜이 특별법'이다. 여당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해 급조한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합당한 절차를 건너뛰고, 기본을 생략한 채 추진하는 사업은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받기 힘들다. 향후 진행 과정에서 많은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며 "특히 급조된 선거용 특별법은 더욱 그렇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토교통부 차관 출신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군위의성청송영덕)은 "여야 정치권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강행은 '국정 농단'"이라고까지 했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제헌국회 이후 제정된 특례법·특별조치법·특별법은 모두 309개인데, 그 증가세가 21대 국회 들어 가팔라지고 있다.

지역 한 정치 인사는 "문민정부(김영삼), 국민의 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 등 정권마다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담은 정부 명칭을 사용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별칭이 없다. 이런 추세라면 '특별법 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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