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창업 권하는 사회

입력 2021-02-16 14:02:38 수정 2021-02-16 18:49:03

이재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이재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이재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1921년,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지성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술 없이는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던 시대를 소설가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로 표현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의 흐름 및 경제적 위기의 돌파구로 창업이 미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 즉 창업 권하는 사회를 맞이했다.

소니, 노키아와 같이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20세기 대표 기업들이 몰락하고 전통산업의 가치는 급속히 하락했다. 그에 비해 애플, 구글과 같은 IT 기업들이 이전에 없던 산업 생태계를 만들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기존 산업의 지각변동에서 생존을 위한 변화를 택한 기업들이 혁신을 일으키며, 글로벌 창업 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 활성화와 청년 취업난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지난 2015년 범국민적 창업을 강조한 이래로 창업가를 이르는 '촹커' 1억 명 육성을 위해 중관촌을 중심으로 청년창업 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서울의 노량진이 공시촌이라면 베이징의 중관촌은 청년창업의 메카이다. 한국의 청년들이 공무원을 꿈꿀 때, 중국의 청년들은 IT 창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중국의 하루 평균 신생 기업 수는 2017년 1만6천600개에서 지난해 2만2천 개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0년 5월 기준 전 세계 436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중 미국(214개)에 이어 중국(107개)이 2위를 차지한 데 비해,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12개에 불과했다. 중국 대학가를 점령한 창업 열풍에 중국 대학생의 90%는 창업을 생각하고, 20%는 창업을 준비한다고 한다. 인구 1만 명당 신설 기업의 수가 한국은 15개인 데 반해 중국은 32개로, 창업 생태계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 사태를 통해 특정 대기업에 의존한 산업 구조의 위험성을 깨닫고 청년들의 혁신 창업에 대대적으로 지원한 결과, 대구경북 인구와 유사한 인구 550만의 작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4천여 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하며 세계에서 인구당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스타트업 선도 국가로 손꼽히게 됐다.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 취임 후, 프랑스를 창업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스타시옹 F' 및 창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취·창업자를 위한 '프렌치 테크 비자' 등 정부 주도의 창업 지원 정책을 펼치며 창업 붐을 조성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도 민간뿐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창업 생태계가 점진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2000년대 초 법적, 제도적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 투자 주도로 일어났던 1차 벤처 붐은 닷컴 버블과 함께 붕괴되며 주가 폭락과 수많은 벤처기업의 파산을 야기했다. 하지만 네이버, 카카오, 넥슨과 같이 닷컴 버블에도 살아남은 잔류 IT 기업들이 도약해 대한민국 IT 강국의 근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으로 인해 경제와 산업 구조 전반에 급격한 변화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 대응 방안으로 한국형 뉴딜정책을 제시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중심으로 제2의 창업 붐이 조성되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서울과 같이 상위 10%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도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 생태계 평가 지수 세계 20위 도시 가운데 서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중국의 중관촌 같은 창업의 메카도, 핀란드와 같은 창업 환경도 아직은 없다.

국가의 운명을 위해 창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청년들이 수없이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기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실패에 따른 위험을 정부와 사회가 함께 분담하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100번의 이력서보다 1번의 창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창업 활성화를 위한 인식의 개선과 탄탄한 사회 안전망이 뒷받침될 때, 진정으로 창업을 권할 수 있는 사회, 혁신 창업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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