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구보례 씨 조부 故 구증회 씨

입력 2021-02-14 15:03:16

구보례 씨가 할아버지 구증회(가운데) 씨와 아버지 구자화(오른쪽) 씨를 모시고 경북대에서 벚꽃놀이를 하며 찍은 사진. 가족제공.
구보례 씨가 할아버지 구증회(가운데) 씨와 아버지 구자화(오른쪽) 씨를 모시고 경북대에서 벚꽃놀이를 하며 찍은 사진. 가족제공.

세상에서 가장 멋지신 우리 할아버지

항상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외출하시던 멋쟁이 우리 할아버지.

"늙으면 자식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며 자식들을 잘 따라 주시던 지혜로운 우리 할아버지.

며느리와 손자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인자하신 우리 할아버지.

불편하신 다리로 본인에겐 택시비 2,000원조차 허락하지 않으시다 밤새 앓으셨으면서

손자들에게는 용돈도 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 주시던 따뜻한 우리 할아버지.

키 작고 이마가 까진 우리 신랑 처음 인사드리러 간 날에도 "어디서 이렇게 참한 신랑을 데려왔냐" 며 우리 신랑의 선한 눈빛을 알아봐 주시고, 나의 결혼과 행복을 응원해 주셨던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할아버지.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너무 멋지고 소중했던 할아버지셔서 일까요?

96세의 연세로 할아버지와 이별한지 이제 9년이 지났는데도 저는 아직도 할아버지가 생각나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어요.

어김없이 흘러가는 나의 시간과 세상 속에 할아버지만 쏙 빠졌을 뿐인데, 그 공허감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할아버지가 떠나신 후로 저는 고향을 잃어버렸답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고향 집은 너무 처참한 모습이라서 슬프고 충격적이었어요.

할아버지께서 늘 앉아 계시던 마을회관 앞엔 망가진 의자만 덩그러니 있었고, 고향 집 마당엔 가지런한 텃밭과 예쁜 꽃밭은 잡초로 가득했고, 늘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던 집안도 곰팡이와 먼지로 가득했어요.

고향의 향취를 즐기며 늘 편안하게 쉬었던 그곳에서 그날은 충격과 슬픔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날 깨달았어요. 저는 고향이 좋았던 게 아니라 반겨 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좋았었다는 것을요. 저에게 고향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가 계신 곳이었다는 것을요.

지금도 너무 생생해요. 할아버지의 음성, 호미질을 많이 하셔서 굽어버린 단단한 손, "할아버지 친구분들과 식사 하세요." 하며 몇 장 안되는 지폐를 주머니에 쏙 넣어드리면 "우리 손녀가 최고다" 하며 밝게 웃어 주시던 그 미소.

자식들에게 행여나 짐이 될까 봐 홀로 고향에서 지내셨지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해 하셨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저도 이제는 정말로 할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띄웁니다. 부디 고통도 외로움도 없는 그곳에서 누구보다 편히 잘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故 구증회 씨가 구보례 씨 부부와 함께 경남 고성군 여행 중 공룡박물관 조형물 앞에서 기념 사진. 가족제공.
故 구증회 씨가 구보례 씨 부부와 함께 경남 고성군 여행 중 공룡박물관 조형물 앞에서 기념 사진. 가족제공.

먼저 가신 할머니의 물건을 종종 꺼내 보시며 늘 그리워하셨던 우리 로맨틱한 할아버지!

지금은 두 분 함께 계신가요? 그곳에서 할머니와 그동안 못다 나누신 이야기 나누시며 즐겁게 지내고 계시겠지요?

할아버지께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었어요. 너무나 멋진 할아버지셨다는 것을요.

할아버지 생전에 사이좋기로 소문난 구 씨네 형제들과 며느리들!

아직도 잘 뭉치고, 다들 화목하게 잘 지낸답니다. 손자 손녀들도 부모님들 닮아서 하나 같이 효자, 효녀랍니다. 그러니 자식 걱정일랑 마시고 좋은 곳에서 마음 편히 쉬세요.

항상 고향에서 저희를 기다려 주시던 따뜻한 사랑과 추억을 자양분 삼아 저희 손자들도 부모님 잘 모시고 자식 잘 키우면서 그렇게 또 열심히 살아갈게요.

할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처럼요.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여서 너무 행복했어요.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손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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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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