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하는 이유

입력 2021-02-01 11:21:30 수정 2021-02-01 18:49:36

김재원 전 국회의원

김재원 전 국회의원
김재원 전 국회의원

내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임명받은 것은 2016년 6월 9일이었다. 얼마 후 나는 대통령께 당시 건설업자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한명숙 전 총리의 사면을 건의했다.

그해 4월 20대 총선 직후 민주당 지도부는 곧 있을 8·15 광복절 사면에 이미 1년 정도 복역하고 있는 한 전 총리를 포함시킬 것을 나에게 요구해왔다. 박 대통령 역시 정치인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국민 여론이 긍정적이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60% 이상이 사면에 반대했다. 정치 지도자가 감옥에 가서도 또 특권을 누리느냐는 논리였다. 여론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대통령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이후 세월은 잔인하게 흘러갔다. 탄핵, 구속이 이어지고 감옥에 갇힌 박 전 대통령은 살아서는 옥문을 나서기 어렵게 되었다.

올 초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다'며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 건의했다. 얼마 후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아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슬쩍 여론을 떠보고 거둬들인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만은 두 전직 대통령을 반드시 사면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탄핵으로 집권했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 보수 진영을 궤멸시켜 집권 기반을 공고히 하고 정치적인 반사이익을 독차지했다. 후세의 역사는 이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관련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되었고, 모두 합해 징역 22년 벌금 180억원이 확정되어 복역 중이다. 청와대 예산에는 특수활동비로 매년 150억원 이상이 계상되어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특수활동비 예산 상당액을 남겨서 반납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10억원가량을 사용하고,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그 액수 이상 남겼다면 왜 국고 손실인지 아직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백번을 양보해 죄가 있다 하더라도, 살아생전에 감옥 문을 나설 수 없는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한 것이 합당한 판결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판결이 확정되었으니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사면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과 주지사에게 광범하게 사면권을 인정하는 것은 잘못된 판결을 민주적 권력이 바로잡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나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의 공화국은 두 동강 난 나라일 뿐이다.

취임하자마자 적폐 청산의 이름으로 전 정권에 몸담은 사람들은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숱한 사람들은 가혹한 적폐 몰이에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조국 사태'에서 보듯 정의를 독점한 양 위선의 극치를 보여줬다. 울산시장 부정선거 사건, 라임·옵티머스펀드 사기 사건,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온갖 범죄는 수사 검사를 내쫓고 덮으려 했다. 정권의 충견으로 공수처를 출범시키지만 장담하건대 그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전 정권 적폐 몰이는 끝나고 현 정권 적폐만 쌓여간다. 역사는 유전(流轉)한다. 사화, 환국이 어찌 조선 왕조에서만 머물러 있겠는가?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해원(解冤)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진보한다.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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