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문재인의 망상

입력 2021-01-20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기습으로 시작된 독소전(獨蘇戰)에서 소련은 이겼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정규군인 850만 명을 포함해 2천만 명이 죽었다. 도시 1천701개, 마을 7만 개, 가옥 600만 채, 공장 3만1천850개가 파괴됐으며, 말 500만 마리, 소 등 가축 1천700만 마리가 독일군에게 약탈당했다. 소련이 미리 대비했다면 독일의 침공에 고전은 했겠지만 이렇게 큰 손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련이 대비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독일과의 전쟁은 1941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스탈린의 맹목적 믿음 때문이었다. 독일의 침공을 경고하는 정보가 1941년 봄 동안 끊이지 않았지만, 스탈린은 모두 무시했다.

영국 총리 처칠은 해독한 독일군 명령서까지 제시하며 스탈린에게 경고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스탈린은 처칠의 경고가 불가침조약으로 맺어진 독일과 소련의 동맹을 찢으려는 비열한 수작이라고 믿었다.

이것 말고도 경고는 넘쳐 났다. 일본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독일 대사관을 상대로 소련 간첩질을 하던 독일인 리하르트 조르게가 독일이 6월 20일 공격할 것이라며 날짜까지 찍어 줬는데도 소련 정보부는 믿지 않았다. 또 침공 전 독일 정찰기가 150회 이상 소련 영공을 침범하고, 침공 하루 전인 6월 21일 독일 병사가 투항해 다음 날 독일군이 공격할 것이라고 했으나 스탈린은 흔들리지 않았다. 스탈린은 투항한 독일 병사를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스탈린이 1941년에 독일과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이유는 독일이 영국과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총부리를 소련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란 자기 나름의 계산이었다. 한마디로 망상(妄想)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망상도 막상막하다. 북한 김정은이 집권 이후 일관되게 핵 무력 강화에 전력투구해 왔음은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핵 무력 건설의 중단 없는 강행'을 천명한 제8차 당 대회는 이런 사실을 재확인해 주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의 평화와 비핵화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핵 무력 강화 천명의 원인을 평화 체제가 구축되지 않은 탓으로 돌리며 평화 체제가 되면 해결될 수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앞장서 국민을 김정은의 핵 인질로 잡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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