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와 말을 주고받을 때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할 때가 있다. 서로 간에 말수를 줄이면 대화가 딱딱하고 건조해지기 쉬우나 좀 더 효율적으로 의사전달을 할 수 있다. 말이 지나치면 본래의 핵심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쓸데없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때로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득이 될 때가 있다.
타지역 사람들은 영남지역 사람들이 말수가 적다고 지적한다. 정작 당사자인 이 지역 사람들은 말수가 적은지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남녀를 막론하고 영남인들은 적은 말수에 익숙해져 있는데 오랜 세월을 거쳐 과묵함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다.
이러한 문화는 주위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데 영남지역은 지형적으로 닫혀있는 곳이다. 북쪽과 서쪽에는 소백산맥이 둘러쳐 있고 남쪽과 동쪽에는 남해와 동해로 가로막혀 있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남지역 사람들은 이 경계 내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다. 하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일구어 왔다.
과거 이 지역은 천년세월을 찬란하게 꽃 피웠던 신라가 있었던 곳이다. 조선 오백 년간 유림의 정신이 뿌리내렸고 근대에 들어와서 주권 수호를 위한 국채보상운동과 해방 후 반독재투쟁에 앞장선 2‧28학생 의거가 일어났던 곳이다.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무려 여덟 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고 정계와 경제계, 문화계 등 각 분야에 걸출한 인물이 배출된 지역이다.
반면에 떠올리기조차 싫은 대형사고도 적잖게 일어났던 곳이다. 지난봄 대구에서 급속히 확산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시민들은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했다. 도시 전체가 일시 정지된 느낌이었고 사람들은 이른바 멘붕상태에 빠졌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구사람이 오는 것조차 꺼려했고 네티즌들은 코로나19와 무관한 정치색까지 덧씌워 비난을 일삼았다.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은 누구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역병과 싸워 난관을 극복했다. 과묵한 영남인의 기질을 통해 이루어낸 성과라 할 수 있다.
설령 말을 한다 해도 영남사람들의 말은 길지 않다. 말이 매우 짧다. "됐나?"고 물으면 "됐다"고 답하면 끝이다. 다짜고짜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으나 경상도 사람들은 곧잘 알아듣는다. 말의 악센트가 첫음절에 있다. "됐나?"는 말은 "되겠느냐?"라는 의문형 질문이 아니라 미래 완료형의 확신 강조형이다. 더 긴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됐다"라고 한 후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
이러한 태도는 큰일이 닥쳤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소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행동선이 굵직하다. 말은 짧지만 행동은 확실하다. 이것이 바로 영남인의 '어단행확(語短行確)'이다. 말에 있기보다 행동을 우선시하는 영남인의 기질을 잘 발휘하면 올해도 승산이 있다.
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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