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구상화가 장이규

입력 2020-11-08 06:30:00

구상화가로서 탄탄한 기초를 가장 중시하는 화가 장이규가 그의 화실에서 작업하던 중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상화가로서 탄탄한 기초를 가장 중시하는 화가 장이규가 그의 화실에서 작업하던 중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이규 작(2020년)
장이규 작(2020년)

미술에 재능이 있었고 그림을 좋아했던 소년은 중고시절 미술부 활동을 하며 고향인 경주 계림 숲으로 풍경 사생을 자주 가곤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계림 숲에서 그림에 열중하던 소년의 눈에 동향 출신의 화가 손일봉이 사생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소년은 어깨 너머로 당대 화가의 수채화를 보면서 '얽히고설킨 나무 둥지의 모습을 어찌 저렇게 수채화로 잘 묘사할 수 있을까? 나도 꼭 저렇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이때부터 소년은 자연을 표현의 대상으로 줄곧 '구상 지향적인' 외길 화풍을 추구하게 됐다.

대구시 남구 계명 중앙 1길 주택가 2층에 자리한 아담한 화실(99㎡)은 구상화가 장이규(66)가 8년째 작업하고 있는 곳이다.

"어릴 때부터 딱지 그림을 따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또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과(74학번)와 동대학원을 졸업(1987년)한 장이규는 대학시절부터 주로 인물화나 풍경 등 사실적인 화풍으로 탄탄한 기초를 다져 여러 공모전에 입상을 했다. 특히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1976년 경상북도전에 출품한 작품은 당시 지도교수와 강사들도 함께 작품을 냈음에도 학생신분의 작가가 은상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이때 받은 상이 화가로서 삶을 살아가게 한 본격적인 이정표가 된 것 같아요."

1987년 대구 태백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장이규의 당시 그림들은 인물, 정물, 풍경이 주류였으며, 형상은 있되 감각적인 색감을 특징으로 한 굵은 붓 터치와 경쾌한 붓질의 유화 작품을 통해 사실적인 묘사의 작품들을 선보여 주변으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시기에 장이규는 중등 미술교사를 하면서도 늘 저녁시간에 짬을 내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는 화단에 전업 작가 붐이 일면서 교직에 몸을 두고 있으면서도 동료 화가들과 만나면 오롯이 그림 그리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개인사적으로도 당시는 힘든 일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쪼들리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작가는 서울 신미술회에 입회하고 인물위주 소품을 출품한 결과, 서울 컬렉터들에게 호평을 얻게 됐고 또 대구 미목화랑에서 열린 신미술회 소품전에 출품한 인물화(발레리나)가 판매되면서 서울 서림화랑에서 전속제의를 받게 됨에 따라 화풍에 변화가 일어난다. 30대까지 꾸준히 그렸던 인물화 중심에서 풍경화 중심으로 변화가 그것이다.

1990년 교직을 그만 둔 그는 풍경화로의 화풍 변화를 위해 직접 전국의 자연을 찾아 사생을 다녔고 이의 재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던 중 대학시절 한 은사가 말한 "녹색에 관한 그림을 연구해 보라"는 말이 떠올랐고, 화면에서 다양한 녹색의 오브제를 재현하면서 자연 속 녹색의 대표적 오브제가 소나무인 것에 착안, 이때부터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에 장이규는 1992년 서울 서림화랑 개인전에서 '소나무'그림이 첫 선을 보였고 이를 본 화랑가 관계자들이 "소나무만을 주소재로 해서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떠냐"는 제의에 의해 이후 소나무 그림에 천착하게 된다. 이른바 '녹색의 귀재'로서 '장이규 표 소나무'가 히트하게 되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제가 처음부터 전문 미술가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다보니 자연히 작가로서 길이 열리기 시작하더군요."

장이규의 소나무는 대부분 실경이 아니다. 일단 이색적인 구도를 앞세우고 녹색에 변화를 준 심상의 소나무를 그리며, 원근감을 통해 화면 속에 무한한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그의 소나무 그림은 화면 속에서 너무 고요하며 바람 한 점 없는 듯하다. 언뜻 보기에도 자칫 지루하게 보이기 쉬운 화면을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명도와 채도의 대비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일상적인 시선에서 느끼는 머리 위로부터 떨어지는 빛이 아니라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을 묘사함으로써 전체 풍경이 뭔가 새롭게 보이도록 시도하고 있으며 화면 속 시간대도 아침 일찍 아니면 저녁 무렵인 것으로 유추하게 만든다. 평단에서 그의 소나무 그림을 '색채의 향연'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시도 때문이다. 거의 20여년을 꾸준히 그려온 그의 소나무 그림은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작품 연식에 따라 색채의 밀도나 명암 등의 표현에서 세분화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10대 시절 계림 숲에서 느꼈던 난해한 풍경을 어떻게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화두 삼아 지금까지 화가로서 구상화에 전념해 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셈이죠."

20세기 들면서 미술 조류는 다양한 변신과 변혁을 꾀해 왔지만 기초에 충실한 화풍은 결국 가치의 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구상화에 매진해 온 장이규는 그러한 뚝심의 결과로 1990년 초 '영남화파'란 이름으로 화단에서 각광을 받게 된 1세대이기도 하다. 이때 함께 활동했던 화가들이 김일해 이원희 곽동효 등이다.

그의 예술론에 따르면 그림이란 기초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히 대상을 보는 눈높이 또한 높아진다는 것. 그래서 외로운 길이었지만 유행을 타지 않고 한 방향으로 줄기차게 구상 그림을 그려왔던 셈이다.

"앞으로는 구도나 색채의 추구에서 비어냄의 화풍을 시도해 볼 요량입니다. 보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화풍을 시도함으로써 추상성과 구상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는 올해 12월 서울 남송미술관에서 열릴 '대한민국 100대 화가 초대전'을 앞두고 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이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한 번 겪지 않고서야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을까?' 장이규의 예술과 삶이 어찌 이와 다를까?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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