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읽남] 대중가요 '고양이 노래' 반세기史 ①

입력 2020-10-02 20:01:38 수정 2020-10-02 22:43:13

Carl Kahler(칼 칼러) - My Wife
Carl Kahler(칼 칼러) - My Wife's Lovers(내 아내의 연인들, 1891)

※추석 연휴 파일럿(pilot, 시험) 콘텐츠로 '음악 읽어주는 남자'를 연재합니다. 대중가요가 굴곡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내지는 우리의 일상을 어찌 다독여줬는지 주목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매일신문 주간지 '주간매일'에 2014년 연재한 '음반 읽어주는 남자'를 '음악 읽어주는 남자'로 명칭을 바꿔 게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줄임말이 '음읽남'인 것은 똑같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우리나라 4가구 중 1가구에 달한다는 통계는 이제 새롭지 않습니다. 다만 저 통계에서 가리키는 반려동물을 두고 반려견(犬, 개)을 먼저 떠올리던 것이, 이제는 반려묘(猫, 고양이)도 버금가게 떠올리게 됐습니다. 아울러 길고양이와 유기묘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졌지요. 요즘만큼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고 시선을 빼앗기는 시대가 인류에게 있었는가 싶기도 합니다.

관심사를 곧장 소재로 쓰기 마련인 대중문화에서도 대중가요 역시, 고양이를 많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살펴보니 '고양이 노래'의 역사는 반세기 가까이 됩니다.

▶대중가요 속 고양이 노래는 대체로 두 종류입니다.

1번 사조: 고양이에 빗대어 표현한 인간군상의 모습.

2번 사조: 소리로 그려낸 고양이 소묘(素描, drawing).

동요를 제외하면 고양이를 소재로 쓴 초창기 대중가요로 '강병철과 삼태기'의 '미스쥐와 고양이'(1984, 수수께끼/어부)가 확인됩니다.

'어느 날 고양이가 낮잠을 자다 먹다 남은 생선 잃고 놀랬답니다. 누군가 알고 보니 놀라웁게도 얌체 같은 미스쥐의 소행이데요. (중략) 미스쥐는 훔쳐갔던 생선토막을 애인에게 애교 떨며 먹이더래요. 얌체 같은 미스쥐 고양이를 놀렸네.'

이 곡은 아마도 흠모하는 미스쥐에게 이용만 당하는 노총각 고양이의 애환을 그린 우화입니다. 1번 사조의 시초쯤 되는 셈입니다.

시인과 촌장 - 푸른 돛(1986)
시인과 촌장 - 푸른 돛(1986)
시인과 촌장. 왼쪽이 함춘호, 오른쪽이 하덕규. 매일신문DB
시인과 촌장. 왼쪽이 함춘호, 오른쪽이 하덕규. 매일신문DB

▶2년쯤 뒤 2번 사조의 문을 활짝 여는 노래도 등장합니다. 하덕규와 함춘호로 구성된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고양이'(1986, 푸른 돛)입니다.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랍군.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고.'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을 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아픔 없는 꼬리.'

'높은 곳에서 춤춰도 어지럽지 않은 그 아픔 없는 눈, 슬픔 없는 꼬리.'

노랫말 속 표현들을 보면, 관찰부터 스케치까지 뛰어난 수준의 고양이 소묘입니다. 같은 발음의 한자어로 장난을 좀 치자면,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묘(猫, 고양이)소묘'쯤 되겠군요. 가사는 하덕규가 써서 직접 불렀습니다. 곡 중반부쯤 "야옹!" 하는 효과음도 내지릅니다.

기타 연주를 맡은 함춘호는 곡 중반부 전환 등으로 잔잔한 포크 속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친해진 듯 했다가 다시 낯설어지길 반복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잘 표현한 것 같네요.

시인과 촌장은 앨범 커버에도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그려 넣었습니다.(위 사진) 앨범 제목 및 첫 곡은 '푸른 돛'이지만, 제일 유명한 노래는 "사~랑해요 라고 쓴다"라는 후렴구가 익숙한 '사랑일기'지만, 실은 '고양이'가 앨범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후 1번 사조 고양이 노래는 주로 이성을 고양이에 비유했습니다. '이승철'의 '검은 고양이'(1991, 방황)가 그랬습니다.

'빨간 장밀 보내볼까 종일 접어 날려 보낼까. 나도 몰래 빨개진 얼굴 이런저런 생각에 젖는데. 춤을 추는 검은 고양이 워 어느새 내 곁으로와.'

이어 댄스 듀오 '터보'가 부른 '검은 고양이'(1995, 280 Km/h Speed)는 1971년 박혜령 양이 불러 잘 알려진 동요 '검은 고양이 네로'(1969년 발표된 이탈리아 동요가 원작입니다. 원래 제목은 '검은 고양이가 갖고 싶었어'(Volevo un gatto nero))의 노랫말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동심은 소거되고 아저씨를 향한 소녀의 짝사랑(?)이 주제로 부각됐습니다.

이승철, 터보. 유튜브 화면 캡처
이승철, 터보. 유튜브 화면 캡처
델리스파이스 - 슬프지만 진실...(2000), Espresso(2003)
델리스파이스 - 슬프지만 진실...(2000), Espresso(2003)

그런데 2번 사조는 어디로 간 걸까요. 2000년대 들어 종종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고양이의 모습과 행동만 묘사하기 보다는, 1번 사조와 결합해 고양이의 특성으로 인간군상의 특성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인의 외양은 물론 내면도 풀어내고, 철학적인 질문도 녹여냈달까요.

모던록 밴드 '델리스파이스'가 활동 기간 통틀어 두 곡 발표한 고양이 노래를 대표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2000, 슬프지만 진실...)은 델리스파이스 특유의 우울함과 따스함이 함께, 그러니까 묘하게 녹아 있는 곡입니다.

'길을 떠나던 한 소녀는 물었지. 아빠 저건 꼭 토끼 같아라고. 무표정한 아빠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 뿐이란다.'

'키치죠지의 검은 고양이'(2003, Espresso)는 일본 도쿄의 한 악기점에서 고양이인지 이성인지 모를 상대와의 짧고 강렬했던 만남을 그립니다.

'약간 마른 몸매. 길게 기른 손톱. 어딘가 슬픈 검은 눈동자. 붉은 카펫트와 인도산 인센스 칭칭 휘감기는 시타 연주. 이런! 나를 할퀴고 갔어. 앙칼지게 쏘아붙였어. 그저 인사를 한 것뿐인데. 그저 꺼내주려 한 것뿐인데.'

이어 2002년은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고양이 노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해였습니다. 고양이 노래가 라디오, TV, 공연장, 음반가게(당시 록 밴드 앨범으로는 경이적인 10만장 판매)를 휩쓸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서입니다. 그 곡은 바로…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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