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산책] 꼭두새벽 길 떠나기(조발·早發)-이병연(李秉淵)

입력 2020-09-04 14:30:00

닭 한 마리 울어대자 덩달아 닭이 울고 一鷄二鷄鳴(일계이계명)

작은 별 떨어지고 큰 별도 떨어지네 小星大星落(소성대성락)

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하며 出門復入門(출문부입문)

살짝이 살짝이 길 떠날 차비 하네 稍稍行人作(초초행인작)

나그네 새벽 틈타 길을 떠날 요량인데 客子乘曉行(객자승효행)

주인은 그렇게는 보낼 수가 없다 하네 主人不能遣(주인불능견)

채찍을 손에 쥔 채 못 이긴 척 돌아서니 持鞭謝主人(지편사주인)

공연히 닭과 개를 깨운 것이 미안하네 多愧煩鷄犬(다괴번계견)

작품 속의 화자는 나그네로서 남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된다. 다 같이 어려운 세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것만 해도 이만저만한 민폐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는 꼭두새벽에 주인도 모르게 살며시 길을 떠나려고 한다. 닭들이 덩달아 울어대고 작은 별, 큰 별이 연달아 떨어진다. 이미 새벽이 왔다는 증거다.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살짝이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이제 드디어 떠나려고 하는데, 주인이 그것을 알아채고 막무가내로 소맷자락 붙잡고 늘어진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을 도저히 이렇게는 보낼 수가 없으니, 아침이라도 자시고 가라고. 그러지 않아도 어디서 요기를 하고 그 먼 길을 갈까 걱정이 태산 같던 나그네가 못 이긴 척 슬며시 돌아선다. 그들의 승강이에 닭들이 다시 한번 꼬꼬댁거리고, 개들이 컹컹 짖어댄다. 떠나지도 못할 거면서 공연히 닭과 개들을 귀찮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개와 닭에게도 미안할 지경이니 주인에게는 말할 나위가 없을 게다.

"초파일 첩첩 산골 세 칸짜리 암자에도/ 코로나 탓이라며 문을 닫아 걸어놓고/ 유턴을 하라고 하네, 아 이거야 정말 나원! // 세상에, 이러다가 첫 뽀뽀를 할 때에도/ 마스크 조여 쓰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 아니지, 방독면 쓰고 뽀뽀하게 될지 몰라." 지난 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 단숨에 지었던, 되다 만 시조 '이거야 정말 나원'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태가 지난봄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는 데 있다. 미증유 파천황의 코로나가 다시 무서운 속도로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 3단계로 강화하게 되면 경제가 와장창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무너지는 것이 어찌 경제 하나뿐이겠는가. 인간과 인간, 세계와 인간의 상호 관계도 무너져버리기 십상이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개나 닭과 같은 동물들까지도 깊이 배려했던 그 순하디순한 우리들의 마음이 와장창 무너지게 되면, 아아, 정말 큰 일이다, 아아!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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