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이상철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가수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의 한 구절이다. 노래 가사처럼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서울로 몰려들었다.
사실 서울은 초기 백제와 조선의 수도(首都)였고, 고려의 부수도(副首都)였던 것을 감안하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약 2000년간 한국 역사의 중심이었다. 서울이라는 명칭도 신라의 서라벌(경주)에서 유래된 점을 인정하면, '서울'이라는 말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역사 속 우리 민족들은 나라의 수도가 어디가 되었던 '서울'이라 불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서울은 어떤 곳인가?
신라, 백제, 고구려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인 곳, 수도가 되기 전엔 늘 천도의 후보지로 손꼽힌 곳, 수도가 된 후엔 조세와 곡물이 모여들었고 팔도의 먹거리가 넘쳐놨던 곳이자 전국의 인재들이 출세를 위해 몰려들던 곳이다.
서울은 중앙집권체제와 관료제의 확립 그리고 우수한 기록문화를 남긴 조선의 수도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외적의 침입과 치욕적인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한반도의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해야만 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굴곡과 환희로 점철된 역사적 시간을 거친 서울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가장 가난한 나라의 수도에서 세계적인 슈퍼스타 도시로 거듭났다. 한때 외국인에게는 대한민국보다 서울이 더 많이 알려졌고, 대한민국은 곧 서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부문에서 서울은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교육, 관광, 문화, 의료 등에서 그 어떤 도시도 넘볼 수 없는 소위 '넘사벽'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서울 집중화를 낳아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을 출현케 했다. 인구집중에 따른 도시 인프라 부족, 과밀화에 따른 지대인상 등은 필연적으로 서울의 광역화를 낳았다. 수도권은 거미줄같은 광역철도로 하나의 생활권이 되었고 서울외곽순환도로(정식명칭:수도권제1순환도로)를 넘어 서울을 1mm도 지나지 않는 수도권제2순환도로를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분권과 수도이전문제가 도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예산, 인사 등 정부기능의 분권화 문제와 단순히 국가기관·공공기관의 이전 문제를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는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도이전을 행정부처의 분산이나 부동산가격 등의 지엽적인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도 있다. 얼마 전, 정세균 국무총리가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대해 "수도 이전 문제와 부동산 대책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안"이라고 말한 점은 수긍이 간다.
서울이 가지는 오랜 역사적 정통성과 실재하는 글로벌 도시브랜드를 고려한다면, 수도를 옮기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묻어난 국민적 합의 없이 추진되는 수도이전 논의는 오히려 크나큰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역사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전제 왕권을 확립하여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구가한 신문왕도 귀족의 특권인 녹읍을 폐지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달구벌(대구)로의 천도는 실패했다. 그 당시 신라인들에게는 경주 이외에 그 어떤 곳도 수도일 수는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구팀은 어디일까?
10여년 전만 해도, 1위는 LG도 두산도 아닌 기아타이거즈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두산, LG, 키움 등 서울연고지 구단의 인기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호남, 영남, 충청 등 지방에서 서울로 유입된 인구가 많았지만 1990년대생 이후부터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태어난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이들은 더 이상 과거 부모의 고향팀을 따라 응원하는 세대가 아니며 서울 등 수도권이라는 생활권과 문화를 공유하고 '서울 부심'이라는 심리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동향인'들이 돼버린 셈이다.
만약 수도를 세종으로 이전 한 후, 향후 서울태생으로 수도권 지역감정을 대변한 대선후보가 행정수도를 다시 서울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우리는 다시 서울로 수도를 이전해야만 하는가?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는 답을 해줘야 한다. 과거 '관습헌법상 서울은 수도'라는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불가피한 것처럼 느껴진다.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한 지방의 혁신도시들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긍정적인 면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혁신도시의 경우, 이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지역 내 빨대효과로 오히려 원도심의 인구가 줄어들고 구도심과 신도시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또한 광역철도와 고속철도 확대로 수도권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으며 최근 사상 최초로 수도권인구는 비수도권인구를 초월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들의 일명 '서울사무소'라는 존재와 계속 늘어만 가는 KTX비용(출장, 출퇴근) 등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수도 이전을 포함한 공공기관 및 주요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시도된 정책들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아니면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인프라만 발달시켰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나 피드백 없이 추진된다면, 공공기관 등을 유치하기 위한 정치적 포퓰리즘과 심각한 지역갈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많은 지자체들은 지방분권을 주장하고 자치권 확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in)서울 명문대에 진학하는 지역출신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향토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특전도 준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진학하고, 일하는 청년들에게는 혜택이 거의 없다. 이러한 이중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공기관 이전문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지역에서 자라고 계속 살 의지가 있는 청년들이 해당 지역에 자리 잡게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이며 지방분권이라 생각된다.
2000년간 축적된 서울의 힘은 단순히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을 옮긴다고 약해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서울에 살지 않아도, 서울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서울에 사는 것처럼 지역에서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토균형개발이 아닐까?
지금, 우리 모두의 '서울'처럼 말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철
댓글 많은 뉴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연휴는 짧고 실망은 길다…5월 2일 임시공휴일 제외 결정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골목상권 살릴 지역 밀착 이커머스 '수익마켓'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