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임 명창 "어머니의 한 풀었습니다"

입력 2020-08-02 16:36:40 수정 2020-08-02 19:56:10

지난 6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 인정받아
큰외조부 장판개 고종 어전 명창…7세 때 어머니에게 소리 배워 입문
25일 대구문화예술회관서 국가무형문화재 인정 기념 초청공연

정순임 명창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서를 들어 보이며 수줍게 웃고 있다. 김도훈 기자
정순임 명창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서를 들어 보이며 수줍게 웃고 있다. 김도훈 기자

"조상들께 이젠 드릴 말이 생겼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지난 6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받은 정순임(78) 명창은 "나라에서 제게 큰 관(冠)을 주셨다. 예술가로 평생을 보낸 제겐 최고의 영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명창 집안은 3대를 이어온 '판소리 명가'다. 호남 출신으로서 1세대인 큰외조부 장판개, 외조부 장도순을 시작으로 2세대인 외숙 장영찬, 어머니 장월중선을 거쳐 본인까지 전통의 맥을 이어왔다. 특히 장판개는 고종 황제로부터 벼슬까지 받은 어전 명창이었다.

어머니 장월중선은 경주에 국악을 뿌리내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남 곡성이 고향인 그는 서울, 목포 등지에서 극단 활동과 후진 양성을 하다 1966년 경주에 터를 잡았다. 1993년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병창 보유자로 지정됐고, 1998년 작고할 때까지 국악 전승·보급에 힘을 쏟았다.

장월중선은 판소리, 가야금 병창은 물론 가야금 산조와 거문고 산조, 아쟁 산조, 살풀이, 승무 등 소리·기악·전통무용에 두루 능했다. 일제강점기 때 판소리 명창 박동실(1897~1968)의 창작 판소리 '열사가'(烈士歌)의 주요 전승자 중 한 명이다.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이준을 주제로 한 4곡의 열사가는 민족혼을 일깨우며 활발하게 전승되다 1950년 박동실의 월북으로 더는 퍼지지 못하고 묻혔다. 다행히 그 맥은 장월중선을 비롯한 박동실의 제자로 이어지며 가까스로 전승됐다.

"어머니는 재주가 참 많은 분이셨지만 국가무형문화재로는 인정받지 못하셨어요. 판소리가 아닌 가야금병창으로 지방무형문화재가 된 게 전부였죠.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정 명창도 어머니 장월중선에게 일곱 살 때부터 소리를 배워 판소리에 입문했다. 1989년부터는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10년간 활동했다. 흥보가 보유자였던 고(故) 박록주의 계보를 이은 박송희(2017년 작고)로부터 흥보가를 이수했고, 2007년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34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돼 판소리 전승 활동에 힘써 왔다. 문화재청은 정 명창의 균형 잡힌 발성과 뛰어난 가창 능력, 전승 활동과 교수 능력 등을 우수하게 평가해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했다.

정 명창은 오는 25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인정 기념 초청공연을 갖는다. 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이 마련한 무대다.

"스승님(박송희)은 구순을 앞둔 때까지 무대에 오르셨을 정도로 소리에 대한 애정이 크셨죠. 남은 생을 후학들과 함께 꾸준히 무대에 올라 우리 소리를 알리고 전승하는 게 스승님 가르침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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