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과 교수
〈공부하는 삶〉이란 책이 있다. 프랑스에서 약 100년 전에 출판되었는데 한국에서는 2013년에 번역되었다. 전문서적도 아닌데, 그 옛날 책을 왜 번역했을까? 세르티양주(Antonin-Gilbert Sertillanges·1863~1948)가 쓴 이 책의 원제는 〈La Vie Intellectuelle〉(1920년)이다. 공부와 관련된 책이나 독서에 대한 책은 서점에 즐비한데 또 공부에 대한 책인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공부보다는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에 방점을 둔다. 이 책은 일생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산 세르티양주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낸 책이다. 그는 배우는 사람은 '일상을 단순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다른 어떤 낱말보다 한 낱말에 유념해야 한다. 반드시 삶을 단순화해야 한다."
그에게 공부는 배우는 일과 산출하는 일이다. 세르티양주는 읽기의 첫 번째 원칙을 적게 읽는 것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읽으면 오히려 정신을 둔화시키고,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는 넘치게 읽기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자연이라는 책과 함께 즐기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한다. 또한 내면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게 읽는 것이 유익하다. 공부를 하든지 일상생활을 하든지 배우는 자의 삶은 단순함에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단순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그러나 현대는 속도감과 복잡함이 아닌가. 기술 발전은 인간의 상상력을 앞지르고 변화 속도는 현기증을 일으킨다. 우리는 오늘도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무엇이든 채우면 채울수록 더 복잡해지고, 세상을 알면 알수록 더 혼란스럽다. 이 무질서, 혼란함, 복잡함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수도승의 아버지 성 안토니우스(St. Anthony·251~356)는 인간 내면에는 두 세계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우리 영혼을 두렵게 하고 생각들을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하며, 낙담하고 불화하게 만들고, 냉담과 슬픔을 야기하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평온함과 온유함과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과 용기를 주는 세계'라고 했다. 무질서와 혼란 세계는 우리의 정신이 수천 갈래로 나눠진 데서 왔다. 우리 정신의 복잡함이 만든 결과가 바로 무질서와 혼란이다. 그러나 평온함과 온유함은 정신의 단순함이 근원이고 기쁨과 즐거움 역시 단순함의 소산이다.
단순함은 소박함이나 간단함(simple)이라는 문자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단순함은 순수하고, 원초적인 것, 진리 자체인 신성(divinity)을 향하고 있다. 김광명은 '자연, 삶,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복잡성의 깊은 곳에는 단순함이 자리하고 있으며, 단순함은 모든 복잡성의 모태가 되는 우주의 심오한 성찰이다. 단순함이야말로 우리의 존재 기반이며 만물에 숨겨져 있는 구조와 조화이다"고 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단순함에 대한 명쾌한 가르침을 주셨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
우리 내면에는 수많은 생각들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내면의 복잡함이 '예'를 '예'로 말하지 못하게 하고, '아니오'를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이 단순하면 우리는 '예'를 '예'라 할 수 있고, '아니오'를 '아니오'라 할 수 있다.
잊지 말자. 단순함이 자유의 문이고 내면의 고요에 이르는 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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