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지난 반 년 여 우리 대구·경북인들은 '코로나19'를 정말 무던히도 잘 견뎌냈다. 높은 시민의식에 긍지를 느낀다. 7월말, 그래도 휴가철은 왔다. 한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를 빌어 외치고 싶다. "고생한 당신, 떠나라!" 대구지역 하늘 길과 땅 길은 이미 작년 수준을 회복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지구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주었다. 가히 지각변동이라 할 만하다. 후대인들은 현금의 역사를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눌지도 모른다. 벌써 2019년을 21세기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꼭 100년 전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실질적으로 20세기가 시작되었음을 상기하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그만큼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은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제 지금껏 당연시되었던 '활동적인 삶(vita activa)'에서 자아의 참된 행위를 탐색하는 '성찰적인 삶(vita contemplativa)'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각종 인문학 모임마저 사교모임의 한 형태로 변질되는 현실 아닌가.
독일인들이 즐겨 쓰는 단어에 '파울렌첸(faulenzen)'이 있다. '한가롭게 빈둥거린다'는 뜻이다. 휴가여행은 수학여행과 달라서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쉬는 것이라는 필자의 말에 아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막상 휴가지에서 파울렌첸을 즐길라 치면 아내의 태도는 표변한다. 그냥 할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거의 매번 필자의 판정패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빈둥대어 보리라는 희망은 잃지 않고 있다.
한가롭게 빈둥거린다는 뜻의 파울렌첸을 노장사상에 빗댄다면 '무위(無爲)'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필자가 이해하는 한, '무위'란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무의 행위', 곧 '인위가 아닌 행위'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헤겔에 의하면, '현실'은 '현상'과 '본질'의 합, 말하자면 구체적인 현상과 그 현상 너머의 '빈 공간'을 포괄하는 중층 개념이다. 여기서 '빈 공간'이라 함은 현상형식을 있게 하는 순수형식, 순수잉여, 곧 사물의 본질이며, 이는 '무위'에 다름 아니다. 파울렌첸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이상인 이유다.
코로나19는 이른바 '피로사회'의 한 원인으로서 활동적 삶이 미덕인 시대에 한가함과 무위의 성찰적 삶을 불러내었다. 성찰적 삶은 게으른 삶이 아니다.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니체의 다음의 말에서 현대인의 문제적 자화상을 보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휴식을 부끄러워하며, 오랜 사색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까지 한다. 시계를 보며 생각하고, 점심 먹으며 주식신문을 들여다본다. 아무 일도 안 하느니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원칙이 모든 교양과 고상한 취미를 파괴한다. 사람들은 한가함을 누릴 시간과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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