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빈집 /이상교 글 /한병호 그림 /시공주니어 /2014

입력 2020-07-24 14:30:00

고양이와 메꽃이 사는 집

빈집 추필숙 사진
빈집 추필숙 사진

빈집은 사람을 비운 집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막살이여도 내 집이어서/ 제일 좋은 우리 집"이라며 시간과 공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난 후, 버려진 집의 이야기다. 다락, 툇마루, 아궁이, 댓돌이 서로 서운하다며 눈물바람을 한다. 그 후, 그 곳에 고양이와 새와 풀이 살러온다. 자연이 들어와 산다. 그래서 "빈집이어도 비어 있지 않은 집"(뒤표지)이 된다.

이 책은 시 그림책이다. 이상교 시인의 시 '빈집'이 글 텍스트의 전부다. 시인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지키고 있는 가을볕과 달개비, 메꽃 등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여러 권의 동시집, 동화책, 그림책을 펴냈고, 세종아동문학상과 권정생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림을 그린 한병호 작가는 한국의 대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에서 '새가 되고 싶어'로 황금사과상을 받았다. 강원도 홍천 미산 계곡 부근의 빈집을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연필과 오일 파스텔, 수채화, 콜라주 등을 활용하여 찬찬하게 펼쳐놓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대청마루에 걸린 액자처럼 정겹고 뭉클해진다.

표지에는 문이 활짝 열린 집안을 캄캄하게 칠해 놓았다. 까만색이 무겁고 어둡다는 생각보다 선뜻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 보고 싶을 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속표지엔 가로로 긴 집을 단색으로 배치했다. 왼쪽 면 끝에서 시작한 그림은 오른쪽 면 중간쯤 경계선을 넣어 싹둑 자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시간의 경과와 이야기의 배경, 그리고 시점을 암시하고 있다. 예전부터 이어온 집의 내력이 현재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문의 그림텍스트는 열네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 한 편을 이렇게 나누다 보니 시 감상에는 상당한 방해가 되었으나, 전문을 따로 실어 독자를 배려하고 있다. 시구 혹은 시행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또는 행간과 연의 바뀜에 따른 여백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일반 그림책보다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장면에서 사람들이 떠난 빈집은 색이 듬성듬성 옅게 칠해져 쓸쓸하고 휑하다. 열두 번째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는 빈집은 이제 화면 전체로 커졌고, 생명과 온기가 차고 넘친다.

마지막 장면에는 글 없이 그림만 배치함으로써 여운과 감동을 준다. 비우면 채울 수 있다. 난 자리는 든 자리가 된다. 고양이도 풀도 집 한 채 생겼다. 이 장면이야말로 표지와 대응하는 최고의 압권이다. 어떤 독자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장면을 바라볼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림은 시의 이해를 바탕으로 조화를 이루고 보완과 확장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시어의 의미와 그림의 능동적 해석이 상호작용하여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문학적이면서 동시에 심미적인 감각을 일깨우는데 적절하게 개입하고 있다. 글 텍스트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고양이를 그림 텍스트의 화자로 내세워 시의 이면을 통찰하고 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풀어냄으로서 빈집의 변화를 따스하고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다.

여력이 된다면 2007년 출판된 미세기 판본도 찾아보자. 그림책에 있어서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량에 따라 책의 모양새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절판되었지만 중고서점에서는 아직 구할 수가 있다. 신동일 작곡가의 CD가 포함되어 읽고 보고 듣는 재미가 크다.

추필숙 학이사독서아카데미회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