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날까 두려워" 대구 성폭력 상담 접수 2년간 '단 2건'

입력 2020-07-17 15:57:29 수정 2020-07-17 20:50:16

대구시 성폭력 예방 매뉴얼 실효성 의문
정부, 2018년 공공기관 성폭력 매뉴얼 의무화했지만 종잇조각에 불과
대구시 성폭력 매뉴얼 대거 개정해 고충상담창구도 뒀지만 막상 사용 어려워
전문가 "독립된 상담 기구와 기관장 등 국장급 성희롱 예방 교육 강화해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로 게시판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피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내용의 메모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로 게시판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피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내용의 메모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공공기관의 성폭력 예방 매뉴얼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박 전 시장의 고소인이 그간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시청 내부에서 이 같은 주장을 묵살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정부는 성차별적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국가기관, 지자체 등 모든 공공기관에 성폭력 사건 처리를 위한 매뉴얼 마련을 의무화했다.

대구시와 8개 구·군도 2018년부터 성희롱·성폭력 피해 상담을 위한 담당부서를 지정하는 등 성폭력 피해 구제 절차를 마련했다. 고충상담창구를 운영하고, 상담이 접수되면 고충심의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의 징계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제 성폭력 피해가 발생해도 매뉴얼을 통한 구제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 내부에서 피해 상담이 이뤄지는 탓에 피해자가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을 쉽게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시와 8개 구·군의 성폭력 피해 구제 매뉴얼에 따르면 고충상담창구는 각 총무과 등의 과장과 팀장, 직원 등 최소 2명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고충심의위원회는 부구청장, 담당 부서 국장, 직장협의회 공무원, 소수의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수성구와 달서구 등 일부 구에서는 고충상담창구 상담원에 외부 전문가를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필수는 아니다.

이런 까닭에 2018년부터 현재까지 대구시와 8개 구·군의 고충상담창구에 접수된 성폭력 상담건수는 ▷대구시 1건 ▷중구 0건 ▷동구 0건 ▷서구 0건 ▷남구 0건 ▷북구 0건 ▷수성구 1건 ▷달서구 0건 ▷달성군 0건에 그쳤다.

고충상담을 맡았던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소속 한 강사는 "고충상담창구 담당자는 대부분 막 입사한 9급 또는 8급 직원인데, 가해자는 상급 직원인 경우가 많아 상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심의위원회에서는 '피해자가 평소 친절한 성격이다보니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젠더의식이 낮은 국장급 인사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외부 인사로 구성된 독립된 상담기구를 만드는 등 피해 구제를 위한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소정 젠더발전소 공동대표는 "고충상담창구는 가해자를 견제할 수 있는 외부 인사로 구성된 독립된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고위 관리직의 성폭력 예방 교육 필수 이수 시간을 늘리는 등 매뉴얼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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