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대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사후'란 죽은 뒤라는 의미고, '불곡'은 곡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내가 죽거든 울지 말라는 유언으로 '백호집(白湖集)'에 전한다.
임제(林悌,1549~1587)는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호는 백호(白湖)다. 백호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아 백가(百家)의 시를 하루에 천 마디씩 외우고 문장도 탁월하여 독보(獨寶)라고 일컬었다. 시재(詩才)가 놀랄 정도로 뛰어나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백호를 일러 기남아(奇男兒)라고 칭찬하였다. 백호는 명산대천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자연을 즐기고 시를 읊었다. 그는 말을 토하면 그대로 시가 되고, 그냥 하는 말 속에도 시문이 정연하여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그가 날마다 창루(娼樓)와 주사(酒肆)를 배회하던 중 23세에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다.
이때부터 놀고 즐기던 주사에서 벗어나 글공부에 매진하였다. 호서(湖西)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지은 시가 성운(成運)에게 전해져 그의 사사(師事)를 받았다. 그 후 3년간 학업에 정진하여 중용을 800독이나 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1576년 속리산에서 성운과 하직하고 이듬해 1577년(선조10) 알성시에 급제하여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지제교를 지냈다.
동서(東西) 분당으로 서로 헐뜯고 비방하고 공명을 탈취하려는 속물들의 몰골이 호방한 그의 성격에는 용납되지 않았다. 벼슬자리에서 보니 선망과 매력, 흥미와 관심이 멀어지고 환멸과 절망, 울분과 실의가 가슴속에 사무쳤다. 백호는 10년 관직생활 중에 인재 등용의 불합리성을 '우담(優談)' 시제에서 이렇게 적었다.
"세상에 정신 잃은 사람도 있구나 / 소를 타고 말에 짐을 싣다니/ 능력에 맞춰 부리지 않으면서/ 모진 채찍질만 사정이 없구나!"
백호를 기인이라 하고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고 하며 글은 취하되 멀리했던 때에 서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그는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 무덤을 찾아가 시조를 한 수 짓고 술을 따랐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 다 누었는 다/ 홍안은 어디가고 백골만 묻혔는 고/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슳어 하노라!"
임지에 도착해 보니 부임 전인데 이미 파직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흐르는 구름 따라 성운마저 세상을 등지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방황하다가 39세에 고향 회진리로 돌아왔다. 재능 있고 호탕했던 백호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예리하여 파당이 벌이는 시대를 끌어안을 수가 없었다. 백호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동녘 바다에는 큰 고래 날뛰고, 서쪽 변방에는 흉악한 멧돼지가 내닫는데'라는 한마디에 큰 고래는 왜구를, 흉악한 멧돼지는 서북쪽의 여진을 염려한 애국심의 토로였다. 10여년의 벼슬생활에서 당파의 무리들이 벌이는 쟁탈에 재능이 억압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는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처자를 불러 놓고 당부했다.
"사이팔만(四夷八蠻)이 제각기 황제라 일컫는데, 유독(惟獨) 우리나라만 황제국이 못되었다. 이런 나라에 살다 가는 데 더 산들 무엇 하며, 죽은들 한 할 것이 무엇이냐!"
다시 입을 열어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말라'(사후불곡)을 당부하고는 운명하였다.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