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산책] 후계자 김여정

입력 2020-07-02 15:50:54 수정 2020-07-02 22:42:38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자리를 함께했다.[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자리를 함께했다.[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연합뉴스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흔히 사람들이 북한은 모든 것이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한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법률과 명령, 자치단체 조례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정교하며 광범하다. 융통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능하면 융통성 없이 엄격하게 지킨다. 그러나 북한은 법이 그렇게 정교하지도 않고 광범하게 포괄하고 있지도 못한 데다 법치국가가 아니다 보니 법을 한국처럼 그렇게 엄격히 집행하지도 않는다. 법의 사각지대가 많은 데다 법규가 있더라도 융통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부정부패가 아주 심하기 때문에 법령이 유연하고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을수록 뇌물을 뜯어낼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기 때문에 관료들은 이런 현상을 아주 좋아한다. 이렇게 융통성이 많은 북한이지만 딱 한 가지에 관해서는 절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 바로 수령제와 관련된 것이다. 북한은 헌법 위에 '유일사상 10대 원칙'이 있다. 다른 법은 지키지 않더라도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절대 어겨서는 안 된다. 매우 엄격해서 그 어떤 융통성도 발휘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아니 지위가 높을수록 더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 '유일사상 10대 원칙'이다. 수령의 가족이라도, 2인자, 3인자라도 절대 봐주는 법이 없다. 김정일이 가장 아끼던 여동생 김경희도,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자 오랫동안 2인자로 간주되어 왔던 장성택도 이를 철저히 지켰고, 선을 조금만 넘는 것처럼 보이면 철퇴가 가해졌다.

최근 대북전단과 관련한 남북 갈등의 전면에 김여정이 나섰다. 이런 악역에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 가족이 나섰다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를 보도하는 각종 미디어나 군중집회에서의 김여정에 대한 태도는 더욱 충격적이다.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①"김여정 제1부부장은 5일 대남사업 부문에 지시를 내렸다"(6월 5일 통전부 담화) ②"김여정 동지는 8일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해 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6월 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 ③"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한다"(6월 13일 김여정 담화) ④"다음 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밝혔다.(6월 13일 김여정 담화) ⑤"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6월 17일 '노동신문') ⑥조선중앙TV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축사를 비난한 김여정의 담화 전문을 그대로 읽었다. ⑦청년동맹·직업총동맹·여성동맹 등 노동당 외곽기구 주도의 대북전단 항의 군중집회에선 예외 없이 '김여정 동지 담화 낭독'이 이뤄졌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탈북자들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담화를 낸 것과 관련, 북한 각계 반응을 6일 1면에 실었다. 사진은 평양종합병원건설장 노동자들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탈북자들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담화를 낸 것과 관련, 북한 각계 반응을 6일 1면에 실었다. 사진은 평양종합병원건설장 노동자들이 "탈북자 쓰레기 죽탕쳐(짓이겨) 버려야" 등 선전물을 들고 비난집회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위의 내용들 중에 단 하나라도 북한에서는 수령과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표현들이다. 지도자의 가족이든 최측근이든 아무리 높은 권력직에 있는 사람이건 절대 쓸 수 없다. 이런 규정들이 매우 정교하고 엄격해서 조금이라도 위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총살이나 정치범수용소행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신문이건 방송사건 통신사건 그 결재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조리 고강도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령제 위반 사항은 이를 지시한 선전선동부 간부만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지시를 그냥 실행하기만 한 신문사나 방송사 관련자들도 광범하게 처벌받기 때문에 김여정이 후계자가 확실하지 않은 조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표현들이 다양한 미디어와 군중집회들에서 광범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은 김여정이 이미 후계자로 임명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언제 갑자기 사고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평소에 후계자를 지명해 놓는 것이 안전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젊은 김정은이 건강하다면 과연 후계자를 지명할 마음이 생길까? 김정은이 건강한데도 만일을 대비해서 후계자를 지명해 놓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할 용기가 있는 간부가 있을까? 젊은 김정은이 후계자를 지명해 놓았다는 것은 어떤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건강 이상이 있다는 신호로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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