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대구가수협회 협회장 "대구 가요계의 뿌리를 지키겠다"

입력 2020-07-03 09:30:59

1일 김명진 대구시가수협회 초대 협회장이 협회 사무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tong@imaeil.com
1일 김명진 대구시가수협회 초대 협회장이 협회 사무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tong@imaeil.com

"문화 예술의 발상지이자 대중가요의 본향인 대구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일 오후 대구 남구 봉덕동 사단법인 대구광역시가수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명진 대구시가수협회 초대 협회장은 "남은 인생을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의 후배 가요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취임 소회를 밝혔다.

대구시가수협회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협회는 선후배 가수의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 가수들의 권익 보호와 공연 확대 등을 위해 발족됐다. 특히 젊은 가수들을 적극 발굴할 예정이다. 김 초대 협회장의 취임식은 3일 오후 호텔 인터불고에서 열린다.

대구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비내리는 고모령'을 비롯해 지역과 관련된 노래가 20여곡이나 잇따라 발표되는 등 가요의 단골 소재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대구 1호 가수 고화성(본명 배경희)을 시작으로 영남고 출신으로 '전선야곡'을 부른 신세영, '청포도 사랑'과 '하이킹의 노래' 등을 부른 계성고 출신인 도미씨도 있다. 경북고 출신인 손시향은 미스코리아 진(眞) 손미희자의 오빠로 '이별의 종창역과 '검은 장갑'을 불러 대구의 위상을 높였다.

이처럼 수많은 선배 가수들의 뒤를 이어가기 위해 김 협회장은 수십년간 무대에서 쌓아온 자신의 노하우를 활용, 지역 가요계를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김 협회장은 50여 년 동안 무명 가수에서 밤의 황제로 불리기까지 숱한 경험을 했다. 그의 가수 생활은 1968년 대구 수성구 수성못 인근의 호수 카바레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추월성 작곡가의 '가버린 정'과 '남자의 순정'으로 데뷔했다. 그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와 무대에 선지 어느덧 5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며 "당시 유복한 가정환경인데다, 부모님의 반대와 보수적인 시대 상황도 한 몫해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후배들을 돕고 양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명진 대구시가수협회 초대 협회장이 대구 가요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tong@imaeil.com
김명진 대구시가수협회 초대 협회장이 대구 가요계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tong@imaeil.com

김 협회장은 학창 시절을 보낸 대구뿐만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 부곡하와이, 제주도 등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다니며 밤무대에 올랐다.

대구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김 협회장은 1980년대쯤 상경했지만 첫 서울살이가 녹록지 않았다. 김 협회장은 "무명가수 시절 사실 1500원짜리 씨레기 국밥 사먹을 돈이 없어 얻어 먹고 다닌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며 "방도 없어 당시 소속사 사무실에서 자면서 라면을 먹어가며 무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무대에 불려다니며 간판 가수로 활동했다"며 "잘나갔던 시절에는 무대를 옮기면 따라다니는 팬들로 가득찰 정도였다"며 전성기 시절을 회상했다.

오랜기간 수많은 무대에 오른 그는 2011년부터 대한가수협회 대구지회 부지회장, 지회장 권한대행까지 역임한 가요계의 베테랑으로써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김 협회장은 "후배들이 앞으로 서게 될 무대를 만들기 위해 그간의 노하우를 활용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걱정없이 모두가 함께 오를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지역 가요계가 빠른 회복하길 바란다"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가수들이 힘 낼 수 있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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