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金 대법원장의 국민 눈높이 ‘좋은 재판’ 발언, 우려스럽다

입력 2020-05-26 06:30:00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20일 검찰의 강압 수사 비리 의혹이 제기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23일 경기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는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20일 검찰의 강압 수사 비리 의혹이 제기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23일 경기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올해 처음으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우리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어떤 재판이 '좋은 재판'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그 결과 국민이 '좋은 재판'이 실현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법관 그리고 법원 구성원 모두가 '좋은 재판'을 실현하려는 사명감과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항상 이를 확인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의 필수 요소로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 진행과 충실한 심리를 꼽으면서 "'좋은 재판'은 국민을 중심에 둔 재판"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사법부 수장의 '좋은 재판'론(論)을 두고 법조계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법과 양심'보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할 경우 자칫 여론 재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대중인기영합주의와 여론몰이에 휘둘려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더욱이 대법원이 지난 2015년 유죄를 확정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해 4·15 총선에서 압승한 여권이 재조사 및 재심 요구를 거세게 제기하는 상황에서 나온 김 대법원장 발언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다. 누구보다 여론 재판을 경계해야 할 사법부 수장이 '국민'을 끌어들여 '좋은 재판'론을 들고나온 것은 한 전 총리의 재조사 및 재심을 위한 멍석을 깔아 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사법부를 사실상 장악했다는 여론이 비등하는 가운데 사법부 독립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는 판결이 비일비재하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법원 스스로 정한 양형 기준을 무시하고 작정하고 봐준 판결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사법부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서는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국민이 바라는 '좋은 재판'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조항을 재판에서 법원이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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