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돌아가고 싶어, 일상 소중함 깨달아"
처음엔 직원 전원 음성, 환자 중 확진자 발생
나이 많아 자가 격리…기간 길어지자 화가 나
"괜찮나" 묻는 친구들 안부전화에도 짜증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가 안정 단계에 접어들면서 일부에서는 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제2미주병원(대구 달성군 다사읍)은 지난달 26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집단 감염으로 코호트(cohort:동일집단) 격리 중이다. 나이가 많아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한 달 넘게 집에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제2미주병원 권영재(75) 진료원장을 통해 당시 상황과 현재의 심정을 들어봤다.
◆첫 확진자 발생 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지난 3월 26일 제2미주병원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3월 18일 같은 건물의 아래층에 있는 대실요양병원에서 첫 환자가 발행한 후 8일 만이었다. 권 원장은 같은 건물 위층에 위치한 미주병원이 다음 차례가 될 게 뻔했기에 나름대로 방역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3월 중순 질병관리본부가 병원 직원 72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전원 음성 판정이 나왔다. 너무도 기뻐 전 직원들과 축하의 의미로 점심을 햄버거 파티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며칠 뒤 열이 나는 환자가 생겼다. 검사 결과 양성이었다. 직원은 물론 입원 환자까지 모두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다수의 환자와 직원 몇 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권 원장은 "그 다음 날부터는 거의 매일 환자가 발생했다"고 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파"
지난달 26일 밤부터 방역당국으로부터 코호트(cohort:동일집단) 격리 명령이 내려졌다. 확진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고, 기저질환이 있거나 65세 이상은 자가 격리됐다. 환자 285명과 직원 72명 가운데 의사를 포함해 직원 20여 명, 환자 150여 명만 남겨두고 모두 철수했다. 권 원장은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나이가 많아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집에서 자가 격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집에 오던 그 날 밤 길거리의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처음에는 마땅히 격리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진료를 다른 의사에게 맡기로 한 것은 미안했지만 잠시 쉬기로 했다. 마침 불교의 하안거(夏安居) 기간이라 이참에 화두話頭) 참구(參:참선하여 진리를 찾음)나 하면서 좋아하는 음악 듣고, 책 읽고, 글도 쓰면서 신선처럼 살기로 했다. "50년 가까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내친 김에 휴가라 생각하고 쉬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잠시, 당국의 감시 전화가 걸려오는가 하면 외출도 맘대로 못하고 아내와의 식사도 따로 하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내는 원칙을 지킨다며 나를 바이러스 덩어리로 여겨 밥상에서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당시엔 슬펐다"고 했다.

권 원장은 자가 격리 기간이 길어지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책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음악도 길게 들을 수가 없었다. 생각과 정서가 혼동돼 가기 시작했다. 생각이 삐딱해지고 감정이 요동을 쳤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가택연금이 된단 말인가?"라고.
모든 게 귀찮았다. "주면 먹고 마냥 앉아서 TV보고 잠만 자는 등 그야말로 할릴없는 한 마리의 곤충이 되어가는 게 화가 났다"고 했다. 권 원장은 "평소 이기주의적 인간들을 야유하고 오직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진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만이 대장부의 갈 길이라고 큰소리치던 내가 이렇게 꾀죄죄한 꼴로 남들에게 눈치만 보고 있는 꼴이 한심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면서 "나이 때문에 자가격리 처분되었지만 그래도 뿌리치고 직원들과 함께 하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웠다"고 했다.
권 원장은 주인공 폴이 사망했지만, 일개 병사였기에 그날 군사령부 일지에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단 한 줄의 문장만 표현한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내용이 생각났다고 했다. "전쟁에서 한 병사의 목숨이 한 개의 부속품일 뿐이듯 나 역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미웠다"고 했다.
친구들의 "'아직도 증상 없나?', '괜찮냐?', '살아 있나?'"는 안부 전화도 고깝게 들렸다고 했다. 전화 끝에 "너희들 참 팔자 좋은 인간들"이라고 혼자 비야냥거렸다. "당시에는 모든 게 귀찮고, 미웠고, 싫었다"고 했다.
권 원장은 2020년 봄은 잔인한 달이었다고 회고했다. 4월이 지나도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내겐 2020년 봄은 없다. 격리 2주 뒤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 격리에서 해제 됐지만 병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최근 병원에서 다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권 원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등 자신이 한 단계 성숙해진 것 같다고 했다. "빨리 코호트가 해제돼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다. 앞으로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사랑하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주위로부터 도움 많이 받아 "갚으며 살 터"
권 원장은 주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자가 격리해 있으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풀 가동해 도움을 청했다. 의협과 대학동문, 고교 동기 등이 도움을 많이 줬다고 했다. "의협에서 덧신, 페이스 쉴드(차광면·얼굴을 보호하는 투명장비), 고글, 방호복, 컵밥, 과자, 마스크 등 필요한 물품을 여러 차례 보내줬다"고 했다.
대학동문(가톨릭대학교)들도 마스크를 보내왔고, 중고등(경북고교) 동기회에서도 캠페인을 벌여 모은 칫솔과 치약, 양말, 간식, 내의 등의 생필품을 보내왔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필요한 물품을 전해왔다. " 직원들은 '박봉과 열악한 근로조건에서도 말없이 일해 온 여러분들과 같은 의료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보냅니다'라고 쓴 동봉된 편지를 읽으며 울었다"고 전했다.
권 원장은 "이런 물품을 받고보니 '내가 헛되게 살진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갚으면서 살아야죠. 좋은 일 더 많이 하면서…"

◆개인병원·종사자에 대한 배려 있어야
권 원장은 현재도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병원 직원에게 미안해 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우주인 같은 방호복을 입고 얼굴에는 용접공 같은 안경을 쓰고, 발에는 덧신을 신고 뒤뚱거리며 일을 한다고 했다. 퇴근해도 집에도 못 가고, 잠자리도 없어 사무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쪽잠을 잔다고 말했다. "갑자기 좁은 병원이 코호트 격리 되고 보니, 샤워는 언감생심, 직원들은 고양이 세수를 한다. 특히 젊은 여자직원들은 화장품이나 기타 여성 물품이 없어 힘들어 한다"고 했다.
권 원장은 또 개인병원 종사자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직원 여러 명이 확진자로 분류돼 입원하자 정부에서는 파견간호사를 보내줬다. 이들은 환자들을 상대로 체온을 재는 등 간단한 일을 하고는 퇴근해 숙소로 간다. 하지만 기존 간호사들은 퇴근을 커녕 병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쪽잠을 자면서 근무해도 그들에 비해 수당이 형편 없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권 원장은 끝으로 확진자로 분류돼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직원들도 입원 기간 2주일 이외에는 무급 휴가로 분류돼 급여가 없어 생계가 위협받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 역시 코로나로 환자가 줄어 경영이 힘들어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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