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국에서 약을 구입하여 직접 동물에게 주사하는 반려동물 자가치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나는 동물병원 진료수의사이면서 동물임상병리학자이다. 동물임상병리학은 종양을 분석하고 질병으로 숨진 동물의 사인을 밝혀내는 학문이다. 더 많은 동물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연구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보다 많은 동물에게 도움되는 의료 시스템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된다.

동물병원을 내원하는 동물은 경증 환자가 드물다. 동물은 사람보다 체온이 2도 이상 높으며 경미한 감염 정도는 거뜬하게 이겨내는 자연 치유력이 강하다. 반면에 동물이 먹지 못하고 증상이 두드러질 정도라면 이미 질병은 심각해졌거나 만성화된 경우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본능적으로 아픈 상황을 숨기려한다. 보호자가 반려동물의 건강 이상을 빨리 인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래서 수의사는 상담과 진찰 외에도 엑스레이, 초음파, 혈액검사들을 통해 동물의 상태를 면밀히 진단하려 한다. 사람 의료와 비교하자면 1차 동네병원에서 종합병원의 진단검사실을 운영하는 셈이다.
통키( 발발이 4살)의 경우를 소개드린다. 통키는 4년 동안 한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성격도 밝아서 진료실에서 처음 마주한 나에게도 다가와 입맞출 정도였다. 외관상으로 아픈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호자는 통키가 2주 전부터 다래끼가 생기고 눈꼽이 많아져 인근 동물약국에서 항생제를 추천받아 먹이셨다 하셨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는 호흡이 빨라지고 열이 난다며 내원하셨다.
통키의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통해 간의 종대와 담낭슬러지의 과형성, 담도관의 염증 소견이 확인되었고, 혈액검사에서는 간수치가 이상이 심각했다. 초기 통키에게 나타났던 눈곱은 내과적인 간질환으로 수반되는 증상이었는데 보호자가 항생제를 투약함으로써 통키의 간이 현저히 악화되어 버린 케이스였다. 통키는 5일 간 집중 입원치료를 받고서야 간수치가 호전되기 시작하였으며 퇴원 후에도 상당기간 치료가 지속되어야 했다.
과거에 비해 동물의 권리는 월등히 신장되었다. 하지만 동물을 치료하는 보호자들의 선택은 현실적이다. 누구나 최선의 치료를 다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진료비 부담을 고려하여 차선 또는 최소한의 치료를 선택하게 된다.
통키 보호자는 먼저 최소한의 치료를 선택하셨다. 인근의 동물약국에서 약을 사고 직접 먹이고 주사하셨다. 안타깝게도 통키는 질병이 더 심각해진 상황에서 동물병원을 내원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동물병원에 입원시키고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셨다. 어느정도 증상이 호전되자 입원비 부담을 고려하여 가정에서의 약물 처방을 선택하셨다.
통키의 경우에서 보듯이 동물의료에서는 최선과 차선, 최소한의 치료가 복합적으로 선택되어진다. 이러한 요구로 인해 동물병원의 규모와 의료장비의 구성은 다양하며 동물약국의 역할도 필요하다. 동물병원마다 같은 질병에 대한 진료비가 현격히 차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동물의료보험의 혜택을 소망한다. 수의사도 마찬가지이다. 진료비 걱정없이 모든 동물에게 최적의 치료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반려인들이 보험에 가입하여야 한다. 하지만 모두의 공통된 희망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2년 간 보험사를 통한 동물종합의료보험 가입율은 극히 미진할 따름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동물진료비 부담을 줄이고자 동물약국을 통한 자가치료를 권장해서는 곤란하다. 어린아이를 전문의에게 진료받지 않고 부모가 자가치료할려는 행위를 공감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동물이기 때문에 소유주가 동물에게 주사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바탕되어 있다.

동물진료비 부담을 줄이고자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의료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음을 자부하듯 한국의 동물의료 수준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동물의료의 질은 그 나라의 동물 복지와 국가 공중보건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려인의 동물진료비 부담을 줄이면서 양질의 동물의료복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동물 입양은 생명을 책임지겟다는 반려인의 약속이다. 동물은 언제나 아플수 있다. 아픈 동물을 치료할 돈이 부담스러워 동물을 버린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핑계에 불과하다. 동물이 아플 때를 대비하지 않는 소유주는 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다. 경제적으로 힘들수록 반려동물이 아플 때를 대비한 대책을 고민하고 입양을 결정하여야 한다.

자동차 소유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책임보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책임보험 이상의 보장을 바란다면 추가적으로 종합보험에 가입하면 된다.
개와 고양이 소유주는 동물등록과 동시에 반려동물책임보험이 의무화되었으면 한다. 반려동물책임보험은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의료비를 지원하고 반려동물로 인한 인명피해를 배상할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자동차 종합보험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의료 혜택을 기대한다면 추가적으로 반려동물종합보험에 가입하면 될 것이다.
반려동물책임보험이 최선의 치료를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차선의 치료 정도는 진료비 부담없이 모든 반려동물에게 보장될 수 있는 미래가 도래하기를 소망해본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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