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페스트』/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20

입력 2020-04-10 14:30:00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빛난다

정동진의 일출_정윤희
정동진의 일출_정윤희

『페스트』(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20)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55쪽)

지금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페스트를 읽게 되었다. 지금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모습에 대하여 적잖이 놀랐으며 페스트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그 당시 상황들이 마음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 책을 통해서 카뮈의 철학적 사상과 통찰력이 시대를 뛰어 넘어 현재도 공존하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알베르 카뮈는 1913년 알제리의 몽도바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대학 재학 시에는 유명한 철학 교수 장 그르니에를 만나 그의 사상에 깊은 가르침을 받았다. 많은 작품과 연극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실존주의 세계관을 넓혀 나갔다. 1947년 『페스트』로 비평가상을 수상하고,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의 배경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작은 도시 오랑에서 시작된다. 의사 리유가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후 도시 곳곳에서 피를 토하며 죽은 쥐들이 목격되면서 페스트가 발병한다. 의사들은 예방 조치를 신속히 취해야 함을 도청 회의에서 의견을 제시하지만 지사의 머뭇거림으로 인해 전염병이 급속도로 확산하게 된다. 결국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자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고 한다.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다시 나가지는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에 점점 두려워하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에 민감하게 된다. 식량보급의 제한과 휘발유의 배급제가 실시되고 물가가 폭등하고 거짓 정보에 현혹되어 알코올이 균을 죽일 수 있다는 말에 술로 병을 낫게 하려고 술에 취하는 자들이 늘어난다.

"처음에는 외부와 차단당하는 것을… 임시적인 불편으로 받아들이는 정도로 알고 감수했는데 하늘 솥뚜껑 밑에 자신들이 감금된 것이나 다름없음을 의식하자, 그들은 막연하게나마 그 징역살이가 자기네 삶을 송두리째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135~136쪽)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늘어나는 환자들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고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자 리유와 장타루를 중심으로 민간자원보건대가 조직된다.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봉쇄로 발이 묶인 랑베르와 오랑시의 하급관리인 그랑, 파늘루 신부도 함께 한다. 이처럼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페스트가 서서히 물러가는 희망을 보게 되지만 장타루와 파늘루 신부, 의사 리샤르 등 많은 사람들이 페스트와 싸우다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전염병이 소멸되지 않기를 바라며 돈벌이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코타르 같은 추악한 인간의 모습도 보게 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401~402쪽)

그러나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고 하며 재앙을 겪은 후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로 이 책은 끝을 향해 간다. 반면에 균이 소멸하지 않고 어디엔가 살아 있다가 언제 불청객으로 다시 나타나게 될 지도 모르는 페스트에 대하여 경종도 울리면서 끝을 맺는다. 결국 페스트가 인생이라고 말하는 해수쟁이 영감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꽁꽁 숨겨놓은 나쁜 균을 찾아서 청소하는 것과 의사 리유와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감당했던 것처럼 현재의 위치에서 주어진 직분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다.

정윤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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