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섭의 북한 화첩기행] <14>그리운 금강산 그러나…

입력 2020-04-02 13:40:28 수정 2020-04-02 20:09:01

"칼 든 강도 같다" 인민군 그림 본 북 심사관 딴지

먼 발치에서 본 금강산 만물상 전경
먼 발치에서 본 금강산 만물상 전경

'98 북한 장전항에 정박한 금강호에서 '권용섭의 금강산현지전'을 하고 있을때 일이다. "화가선생 어딧시오!". 누군가 다급히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빼곡한 군중들을 비집고 4개의 부스중 끝 쪽으로 갔는데 북측 심사관 세 명이 나와서 나를 째려 보면서 특정 그림을 가리키며 "이 그림을 그린 화가선생이요?" "네, 저인데 왜 그러십니까?"

6·25전쟁 이후 남측에 금강산이 처음 열리고 필자는 현대금강호를 타고 신이 나 달려갔는데 휴대한 카메라의 렌즈의 크기를 자로 재며 "크다, 적다" 통제하며 까다롭게 말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필자는 잔뜩 호기심이 발동해 처음 열린 북한을 면밀히 관람하며 화첩에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사진을 자유롭게 찍다가 지적을 당하느니 보이는 대로 화첩에 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해금강 입구에 북한 군인 즉, 인민군들이 남측 관광객들을 검문검색하며 철망 사이를 통과시키고 있는 그들의 복장이 특이하여 걸어가면서 크로키 했다. 화첩에 담았던 그림을 낱장으로 뜯어 전시를 하게 되었는데 북측 심사관들이 찿아 와 자기네 군인들을 험상궂게 그렸다며 지적을 하는 것이다.

해금강 입구를 지키는 인민군 초병을 걸어 가면서 한 첫 크로키. 초병들의 손에 수기를 말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칼을 든 강도 같다며 지적을 받았다.
해금강 입구를 지키는 인민군 초병을 걸어 가면서 한 첫 크로키. 초병들의 손에 수기를 말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칼을 든 강도 같다며 지적을 받았다.

초병들의 손에 수기를 말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칼을 든 강도 같이 그렸다며 "의도가 뭐냐!"며 딴지를 거는 것이다. "이거이 우리 군을 이렇게 험상궂게 그려져 위협하는 강도같아 남조선 관광객들이 오겠시오? " "그렇찮아?" 하며 자기 동료들과 마주보며 신중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봐도 화첩에 그린 그림은 험상궂고 마치 칼든 강도 같았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북한 금강산에서 며칠 동안 지내 본 결과 남과 북의 문화차이와 이념의 충돌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모처럼 남북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생색을 내는 북측의 억지에 남측은 양보를 넘어 굴욕외교라 할 만큼 저자세를 보이는 것이 한 두건이 아니었다. 당시 상주하는 현대직원은 물론 내로라하는 남측 언론사의 기자들조차 여차하면 취재활동도 제대로 못하고 꼼짝없이 억류까지 당하는 판국이었다. 아무 배경도 없이 혼자 온 나로서는 이런 일을 당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전시장에서 북한 심사관에 지적을 당한 후 현지에서 다시그려 보여준 그림
전시장에서 북한 심사관에 지적을 당한 후 현지에서 다시그려 보여준 그림

"아니 며칠사이에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하며 현대상선 팀에서 마련해 준 금강산 현지전시에 김일성 배지를 단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추궁을 했다. 모두가 웅성대며 구경들만 할 뿐 누구 하나 필자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그림을 잘못 그려 죄송하다는 설명에 이어 수묵속사를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명대에 비치된 붓과 화첩을 들었다. "이것이 말입니다. 내가 관광객 틈에서 걸어가며 그리는 것을 이 군인들이 봤습니다." 화첩을 놓고 정확하게 속사를 보여 주었다.

이번 그림에는 인민군 초병이 말아서 들고 있는 수기를 펼쳐 든 빨간 수기로 고쳐 그리며 장황하게 그들을 이해를 시켰다. "이 사람들에 물어봐요. 내가 걸어가며 그렸으니 이렇게 삐뚤게 그렸다니까요." 모델 인민군은 손가락으로 가리켜며 새로 그림을 그리는 나를 쳐다보며 "허, 빨리도 그리네" 하며 실소를 띠며 가버렸다. 그제서야 관객들 중에 누군가 그들을 향해 외쳤다. "통일합시다~"

권용섭 독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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