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색깔 전쟁

입력 2020-02-19 06:30:00

미래통합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왼쪽부터), 심재철 원내대표, 김원성, 김영환 최고위원, 황교안 대표, 이준석, 조경태 최고위원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
미래통합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왼쪽부터), 심재철 원내대표, 김원성, 김영환 최고위원, 황교안 대표, 이준석, 조경태 최고위원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 '해피 핑크'색 점퍼를 입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빛의 반사체인 색깔은 맛, 냄새처럼 뇌가 느끼는 주관적 감각이다. 그래서 색은 고유의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 색은 곧 문화이고 이미지 그 자체이며 기업의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정치도 색깔을 이미지 도구로 삼는다. 정당의 상징색은 크게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파란색은 보수 진영을 상징했지만 2012년 2월부터 흐름이 바뀌었다. 그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바꾸는 파격을 단행했다. 반대로, 그해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은 2013년 5월 당명을 민주당으로 개칭하면서 상징색도 파란색으로 바꿨다.

정당이 많아지면 정치판의 색상도 알록달록해진다. 파란색과 빨간색을 거대 양당이 선점했으니 남은 것은 노란색, 초록색 등 나머지 색들이다. 바른미래당의 상징색은 초록색과 하늘색을 섞은 민트색이다.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오렌지색을 상징색으로 채택했다. 그러자 오렌지색은 자신들의 상징색인 주황색과 같은 색이라는 민주노동당 항의를 받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런데 국민의당 해명이 재미있다. "(우리의 상징색은) 좀 더 비비드(vivid: 밝고 선명하며 생생하다는 의미)하다."

자유한국당의 새 통합당인 미래통합당은 새로운 상징색을 핑크빛으로 정하고 이를 '밀레니얼 핑크'라고 이름붙였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에서 경험하지 못한 상징색이다. 핑크빛은 곱상해서 여성스럽게 비친다. 하지만 색상에 대한 이미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랐다. 1927년 타임지에서 미국의 주요 백화점이 아이의 성별에 따라 어떤 색깔의 옷을 권장하는지 정리한 표를 보면 상당수 대도시에서 남자아이에게 권하는 옷의 색깔은 분홍색이었다.

민중당 이은혜 대변인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민중당 이은혜 대변인이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주황색은 원내정당인 민중당이 3년째 사용 중인 색임에도, 국민당은 단 한마디의 상의나 양해 없이 일방적으로 (당색을) 결정하고 선포했다"며 "국민당(가칭) 안철수 창당준비위원장은 '주황색 가로채기'를 그만두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의 오렌지색 논란, 미래통합당의 밀레니얼 핑크는 우리나라 정치 무대의 색깔 품귀 현상이 빚어낸 산물이다. 양당제를 선호하는 국민 기대와 달리 군소정당 난립과 정당 간 이합집산으로 인해 우리 정치판은 때 아닌 색깔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요란한 색깔들이 거리를 장악할 것 같다. 일곱 색깔 무지개는 조화롭기나 하지, 정치권의 색깔 전쟁은 눈만 아프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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