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 <61> 부엌과 주방

입력 2020-02-17 18:00:00

부엌의 부뚜막 넓어지면서 온돌 발달…취사만 하던 주방과는 전혀 다른 공간

전통 부엌은 취사뿐 아니라 난방을 담당하는 곳이다.
전통 부엌은 취사뿐 아니라 난방을 담당하는 곳이다.

부엌과 주방은 전혀 다른 공간이다. 주방은 본래 궁중의 수라간을 말하던 소주방(燒廚房)에서 유래되었다. 그것은 음식을 불에 굽거나 조리하는 공간, 즉 취사만을 전담하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부엌은 취사뿐 아니라 실내의 난방도 담당하는 곳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이른바 입식부엌이 선을 보이면서 부엌 또한 주방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그로 해서 부엌에서 주방으로의 변화를 여성의 지위 향상과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난방과 취사를 담당하던 부엌이 취사만을 전담하는 주방으로 바뀐 것은 그 기능이 축소되고 위상이 격하된 것이다.

구석기시대에는 집 안이 아닌 앞마당에서 불을 피웠다. 그러다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굴뚝을 설치함으로써 집안에서도 불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피웠던 불은 취사뿐 아니라 실내의 조명과 난방의 역할도 함께 담당하였다. 그런 가운데 고대 크로마뇽인들이 동굴 속 벽화를 그릴 때 동물기름으로 불을 켜는 돌 램프를 사용함으로써 최초로 불에서 조명의 역할이 분리되었다.

난방과 취사의 기능은 분리되지 않고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중세 유럽의 농가주택에는 큰 홀이 하나 있어서 중앙에 난로를 피웠다. 또는 구석에 벽난로를 마련하여 솥을 걸고 수프를 끓이는 것으로 난방과 취사를 함께 해결하였다. 과거에는 불을 그렇게 마음대로 땔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의 불로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일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온돌이다. 온돌은 아궁이에 붙인 불로 가마솥의 밥을 짓고, 그 열기가 구들을 통과하면서 방을 데우는 방식이다. 이때 최초의 부뚜막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앉으면 따뜻하였고, 저녁에 불을 때면 다음 날 아침까지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열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인 연도를 길게 만들어 여러 사람이 함께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하였다. 그것을 쪽구들이라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쪽구들의 크기가 넓어지면서 온돌이 되었다.

전통부엌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신을 신고 생활하게 되었다. 옛 고구려시대의 집 내부도 흙바닥으로 마감된 채 방의 일부에 쪽구들이 설치되었다. 그때의 방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대부분 실내에서는 신을 신고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잠을 자거나 누울 때만 신을 벗고 쪽구들 위에 올라가는 방식을 택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온돌과 이러한 생활습관이 한반도 전역에 퍼졌다. 실내에서 신을 벗는 주거문화를 가진 민족은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가까운 중국도 실내에서는 신을 신고 생활하고 있다.

이 같은 생활문화로 보아 온돌과 신을 벗는 생활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온돌이란 부엌의 부뚜막이 점차 넓어지면서 변화 발달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집의 가장 근본적인 공간은 부엌이며, 안방도 여기서 파생 분화된 것에 불과하다. 서윤영이 쓴 "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을 참고하였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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