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분단의 아픔과 망향의 그리움을 노래한 대중가요 "한 많은 대동강"의 가사이다. 노랫가사중에 등장하는 을밀대(乙密臺)는 금수산(모란봉) 을밀봉 아래에 있다.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將臺)로 세운 정자로 평양성 제일 높은 곳에 있다.
6.25전쟁 이후 3.8선의 철조망이 가로 막혀 오가지도 못해 피난민들이 이산의 아픔을 담은 시와 문학과 대중가요에 대동강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필자는 2003년에 이어 2018년에는 아내와 함께 방북해 모란봉 일대를 화폭에 담으려 화구들을 챙겨 올랐다.

금수산(모란봉)은 서울의 남산격으로 평양시내 한 가운데 있으며 그리 높지 않는 산이다.을밀대 가는 길은 초대소에서 돌성을 따라 '최승대'와 '현무문'을 보면서 오르는 길과, 대동강 옥류관에서 올라 가면 '칠성문' ,'애련정'을 지나 가는 길이 있다. 우리 일행들은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오르는 길을 택했다. 언덕의 시작점인 칠성문 주변에는 소나무 가지들이 얼굴에 스칠 정도로 굽어 쳐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했다. 마치 정원과도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가파르지 않는 언덕을 따라 평양성을 걸었지만 등산객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소풍나온 듯한 학생들의 모습은 종종 볼 수 있었다. 이것 저것 스케치하며 올라도 한 시간이 채 안되어 가장 높은 위치인 을밀대 앞에 섰다. 6세기 중렵 고구려시대에 평양 내성 북쪽 끝 지점에 처음으로 세운 장대 을밀대는 을지문덕의 아들 '을미장군'이 지어 군사지휘소로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개의 기둥으로 세워놓은 을밀대를 중심으로 둘러 쌓인 돌 성에 한 발 간격으로 활을 쏘는 구멍을 내놓았다. 을미대에서 필자는 북측 안내원들에게 평화로운 문화행동으로 수묵속사 퍼포먼스를 겸한 스케치를 보여주기로 했다.

아내와 커다란 화폭의 천을 맞잡아 펼쳤다. 을밀대 아래 잔디광장 사이사이에 듬성듬성 늘어진 소나무와 짙게 물들은 단풍 나무들이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북한의 노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기법이 북한식 극사실 기와집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도 채색을 하지 않는 수묵화인지라 반가워 말문를 텃다. "수묵만 하십니까?"라고 물으니 나이 지긋한 노화가는 "아니 색을 칠 해야 잘 팔리지요" 하는 것이었다. 몇 마디 화법의 이야기를 나누며 30분에 거처 후딱 그림을 그렸다. 그는 나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더니 "그림을 참 빨리 그리시네요." 하는 것이다.
예! '저도 선생님 처럼 앉아서 종일 그리고 싶은데 일정이 그렇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했더니 노화가가 물어 왔다. "다른곳은 어디 갈 겁네까?". 칠보산, 묘향산, 박연폭포, 등 내가 북한 전역에 그리고 싶은 곳을 줄줄이 다 말했더니 '금강산은 왜?' 빼냐며 금강산을 꼭 가보란다. 금강산 좋지만 저는 20년전에 금강산에서 100여점의 그림을 그려왔다고 얘기했다. 그럼 묘향산을 추천 한다고 했다. 잠시 후 주변 일행들과 사진을 찍기로 했다.

'부산 오륙도에서 평양까지' 스케치 기행을 하겠다며 플랜카드를 펼쳤더니 이 또한 통제를 하고 나섰다. 그리고 을밀대 그림만 들고 찍으라는 것이다. '자유'라는 용어를 강하게 떠오르게 했다. 순간 누군가 명령을 했다. "넥타이 맨 사람만 들어가라우!" 아... 어이가 없었지만 나의 그림에 대한 예우이겠거니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했다.
이러한 문화행동에서 생기는 교류의 틈을 나는 즐기고 있었다. 하산하는 길에 소련군 위령탑이 있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평양성에만 관심을 갖고 기념 쵤영을 했다. 고구려때 부터 이어져 온 전쟁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피를 흘리며 뺏고 뺏기었던 평양성을 화가인 우리가 점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총칼보다 강한 것이 붓이 아니겠습니까."며 이런 저런 제스쳐로 문화행동을 즐기며 내려왔다.

바위로 둘러쳐져 움푹패인 요새 같은 광장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북한주민 인민복을 입거나 양복, 한복 등 자유로운 복장의 남여들이 녹음기를 틀어 놓고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70년여 동안 분단된 남북이 겨루어온 이념들을 와해하는데 어떻게 내 생각만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많은 것을 곱씹어 본다. 권용섭 독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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