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창의성] '수연'(樹緣):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

입력 2019-12-30 18:0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변증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주로 혈연, 지연, 학연 등을 통해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 있다. 인류가 처음 만든 씨족사회는 공동의 조상을 가진 공동체이다. 이 같은 공동체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산물인 씨족사회는 농업사회를 유지하는 데 아주 유익한 공동체였다.

우리나라에 씨족 공동체가 아직 적잖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농업사회의 의식구조가 강고하다는 증거다. 혈연 중심의 공동체는 대부분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유지된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같은 성을 가진 집성촌이 남아 있고,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대종회와 향우회가 활발하다. 학교 출신에 따른 동창회와 동문회가 활발한 데서 보듯이, 학연도 혈연과 지연 못지않은 조직을 갖고 있다.

혈연, 지연, 학연은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다. 그러나 '삼연'은 이성을 둔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삼연이 크게 작동하면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삼연은 각 시대마다 역할을 담당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큰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끝내야 할 시대는 제때 끝내야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 원인 중 하나도 봉건시대를 스스로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끝내야 할 시대를 끝내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을 초래한다. "서경(書經)·태갑중(太甲中)"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스스로 재앙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갈등 중 대부분은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적지 않은 기성세대들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의식은 세대의 갈등을 넘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변화는 세상살이의 이치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나무가 때맞춰 변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스스로 변할 뿐, 결코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변화의 주체는 자신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제때 변하지 않는 것은 철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 인간은 아주 절박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변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래서 반드시 변해야만 한다.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그래서 하늘이 도와서 이롭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주역(周易)·계사전하(繫辭傳下)"에 나오는 역(易)의 원리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새로운 인연이 절실하다. 나는 나무와의 인연, 즉 '수연'(樹緣)을 주장한다. 수연은 혈연, 지연, 학연보다 앞선다. 나무는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살았을 뿐 아니라 인간은 하루라도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과 위기의 대부분은 나무에 대한 무지와 무시 때문이다. 그간의 문명은 대부분 숲의 제거를 통해 이룬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점차 위기를 맞았다. 인간이 위기를 맞은 것은 나무와의 만남을 악연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악연의 원인은 나무를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 탓이다. 그래서 인간은 나무를 함부로 다루었다. 나무에 대한 인간의 몰상식적 태도는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수연은 천부 인권처럼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나는 이를 '수권'(樹權)이라 부른다. 수권 인식은 한 사회를 부강하게 만들뿐 아니라 최상의 복지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권을 실현해야 한다. '수권시대'는 나무를 인간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길 때 가능하다. 나무를 생명체처럼 여기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한 그루 나무 이름을 가지는 것이고, 모든 국민이 한 그루 나무 이름을 가지면 아주 가까운 장래에 수권시대를 만들 수 있다. 나의 나무 이름은 물푸레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인 쥐똥나무다. 쥐똥나무는 나무의 열매가 '쥐똥'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쥐똥나무의 하얀 꽃향기는 지친 사람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고도 남는다. 쥐똥나무는 도시든 농촌이든 전국 어디서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빛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한 그루 나무가 희망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