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2019년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해 질 무렵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기르던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런 한 해였다. '조국 사태'는 배신감과 분노를 안겼다. 국민을 갈라놓기까지 했다. 정치인의 '내로남불'은 진저리 날 정도였다. 국회는 1년 내내 패스트트랙을 놓고 동물국회, 식물국회를 연출했다. 적폐 청산은 또 다른 적폐로 이어졌다. 불통(不通) 화법도 넘쳐났다. 서민들은 죽겠다는데, 높은 분들은 경기가 괜찮다고 했다. 정치권은 '우리는 항상 옳다'며 자기 진영만 대변한다. 정치는 이념 대립과 국론 분열을 더 부추겼다.
이념 갈등은 국민의 큰 걱정거리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밝힌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는 이념 갈등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91.8%가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을 꼽았다. 다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85.3%), '대기업과 중소기업'(81.1%), '부유층과 서민층'(78.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념 갈등은 2016년만 해도 순위가 다섯 번째(77.3%)였다. 3년 사이 14.5%포인트나 상승했다.
한국 사회는 '누구 편이냐'에 따라 선악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틀에 갇혀 있다. 가짜 뉴스와 선전선동은 춤을 추고 있다. 민주화를 이끈 광장정치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광화문 vs 서초동'의 분열정치로 변질됐다. 공동체 의식, 사회정의는 공허해졌다.
2019년은 '탈진실(post-truth)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은 '탈진실 사회'를 "대중의 의견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적은 환경"이라고 정의한다. 진실과 사실이 이전처럼 중요하지 않게 돼버렸다. '탈진실'은 1992년 미국 작가 스티브 테쉬흐가 잡지 '네이션'에 기고한 에세이에 처음 등장했다. 이 용어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고 있다. 이제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데 용이한 용어가 됐다.
교수신문은 올해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뽑았다. 공명조는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 한 머리는 낮에,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가 이를 질투했다. 다른 머리가 화가 나서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다.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됐다. 즉 공명지조는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되는 '운명 공동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대단히 심각한 이념의 분열 증세를 겪고 있다"며 "양 극단의 진영을 만들어 서로 적대시하며 혈전 중이다. 그러는 동안 모두 위험한 이분법적 원리주의자가 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공명조 전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분열된 우리 사회가 부디 대승적으로 상생의 지혜를 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곧 2020년 새날이 온다. 바른 성찰과 새 의지로 희망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통합에 나서주길 바란다. 정치권은 진영 놀음을 걷어치워야 한다. 국민들은 내년 4·15 총선에서 준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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