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학생들이 '6·10 규탄대회'를 마치고 경찰에 쫓겨 서울 명동성당으로 피신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경찰력을 투입할 것을 통보하자 김수환 추기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이오. 그다음에는 농성 중인 신부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수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오.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소.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시오." 김 추기경의 단호한 모습에 정부는 학생들의 안전 귀가를 보장하고 경찰을 해산했다.
지인들을 만날 때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어른이 없다"는 말이다. 가정은 물론 직장·단체, 대구경북, 국가적으로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김 추기경처럼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른의 부재(不在)를 절감하는 시절이다.
어른이 없는 세상이 된 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나이 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이 '꼰대'라는 비아냥을 받게 된 데엔 자초한 측면이 많다. 오죽하면 나이 든 사람들의 행태를 비꼬는 "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라떼 이즈 어 호스'(Latte is a horse)가 유행할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른을 인정하지 않고 만들지 않는 사회 풍토가 팽배해진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무시하는 아버지를 지켜본 손자가 할아버지를 존경할 리가 없다. 그렇게 한 아버지가 아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도 어렵다.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도 크다. 대통령은 원로들을 청와대에 불러놓고선 그들의 얘기를 듣는 시늉만 할 뿐 국정에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 대표들도 원로의 쓴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한 정파의 수장으로 머무는 한 그들은 나라의 어른이 될 수 없다.
아프리카 속담에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고 했다. 지금 이 나라에선 지혜의 보고인 도서관이 허망하게 불타고 있다. 세대 간에 지혜가 전해져야만 가정과 지역, 나라가 건강해지고 영속(永續)할 수 있다. 어른이 없다고 개탄만 하지 말고 어른을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을 '꼰대'로, 나이 든 사람은 젊은이들을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라고 서로 비난만 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너무나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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