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침략에 무너진 남송, 숨어 지내며 지조 지키던 심정 그린 시
집으로 돌아갈 꿈 10년 동안 안 꾼 채로 / 十年無夢得還家(십년무몽득환가)
푸른 산에 홀로 서서 물가를 바라보네 / 獨立靑峰野水涯(독립청봉야수애)
산 비 뚝, 그치고 나니 온 천지가 적막한데 / 天地寂寥山雨歇(천지적요산우헐)
몇 생애를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몰라 / 幾生修得到梅花(기생수득도매화)
* 원제 : 무이산에서 (武夷山中, 무이산중)

사방득(謝枋得, 1226~1289)은 옛날 우리나라 선비들이 '고문진보(古文眞寶)' 다음으로 많이 읽었던 산문집 '문장궤범(文章軌範)'을 편찬한 중국 남송(南宋) 시대 저명 문인이다. 원(元)나라의 침략으로 남송이 마지막 숨을 헐떡거릴 때, 끝의 끝까지 저항을 했던 만고의 충신으로 더욱더 유명하다. 결국 나라가 멸망하자, 그는 무이산에 숨어살면서 망한 나라의 신하로서의 지조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원나라는 사방득이 산속에서 조용히 숨어사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 번 불러도 나오지 않자, 마침내 강제로 수도에 끌고 가 그의 마음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사방득은 끝까지 원나라에 굴복하지 않고 음식을 딱, 끊고 굶어 죽어버렸다. 경술국치를 맞아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면서, 24일 간의 단식 끝에 목숨을 끊어버린 한말의 의병장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인용한 작품은 사방득이 의병을 일으켜 원나라에 대항하다 실패한 뒤에, 10여 년 동안 무이산에 숨어살 때 지은 시다. 보다시피 그는 지난 10년 동안 집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집으로 돌아가는 꿈조차도 꾼 적이 없었다. 나라가 멸망하고 아내와 아들마저 적의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돌아갈 집이 어디 있으랴. 적막한 천지간 산봉우리 위에 혼자 우뚝 서서 망연자실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몇 생애를 더 닦아야 매화가 될" 수 있겠느냐고 나직이 탄식하고 있다. 매화와 같이 그윽한 향기와 고매한 품격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뜻이 되겠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는 이미 혹독한 겨울철 펄펄 휘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환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향기가 훅, 풍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나는 몇 생애를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닦고 또 닦으면 언젠가 매화가 되기는 될까?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도대체 몇 생애를 더 닦아야 철이 들까? 언젠가 철이 들 날이 오기는 올까?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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