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52> 달항아리

입력 2019-12-16 18:00:00

우리네 살림에 쓰이는 세간 가운데 크고 작은 항아리가 있다. 눈여겨보면 항아리 가운데는 잘 생긴 것들이 많이 있다. 이 같은 항아리를 빚어 낸 사람들은 큰 욕심 없이 무심히 빚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사들여 아침이나 저녁으로 매만지던 여인들도 그저 대견스럽게 여기며 무심하게 다루었을 터이다. 이것들 가운데서 그 모습이 마치 둥근 달과 같다고 해서 '달항아리'라 부르는 게 있다.

조선시대에 빚어 낸 유백색의 달항아리들. 자세히 살펴보면 풍만한 형태와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백자 달항아리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흰 바탕색과 어울려 욕심이 없고 순정적이다. 마치 인간이 지닌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큰 항아리는 다른 그릇처럼 물레에서 한 번에 그 모양을 뽑아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 두 부분을 이어 붙여서 완성한다. 그런데도 이어붙인 부분이 일그러지지 않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몸체의 곡선이 둥글고 부드럽게 처리되어 형태가 거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다.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항아리다.

백자를 빚은 도공들의 마음을 어림으로 헤아려 본다. 그들은 그 같은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항아리의 둥근 맛과 여기에서 저절로 지어지는 의젓한 곡선미에 남몰래 흥겨웠을지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비록 작가의식을 가지고 빚지는 않았을지라도, 손길은 그들의 흥겨운 마음을 따라 움직였을 터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흰색으로만 구워 낸 달항아리. 그 흰색의 변화나 어리숭하게 생긴 둥근 맛을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독특하다. 그것들을 수십 개 늘어놓은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어느 시골장터에 모인 이 땅의 착한 아낙네들 모습이 떠오른다. 일찍이 조선 사람들을 백의민족이라 하였지만, 그 흰색과 달항아리의 흰색은 같은 마음씨에서 나온 것이리라.

중국이나 일본의 자기들은 다채로운 색깔이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한다. 하지만 우리네 백자는 산 배꽃이나 젖빛에 비유할 수 있는 순정어린 흰빛의 조화를 유유하게 뽐내고 있다. 또한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어리숭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다. 아무튼 우리네 자기는 이렇게 뽐낼 줄 모르는 것으로써 한몫을 보고 있는 것이다. 특유의 심미안이 녹아 있는 걸작 중에 걸작이 조선시대 달항아리다. 새삼 확인이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서가에 앉혀 놓은 달항아리를 바라보았다. 내 어리석음을 나무라는 듯 빙그레 웃었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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