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연예인 관찰카메라 시대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9-12-11 11:31:00 수정 2019-12-12 18:38:38

‘미운 우리 새끼’ 김건모 사태로 보는 관찰카메라의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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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김건모

지금 지상파에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은 MBC '나 혼자 산다'나 SBS '미운 우리 새끼'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김건모 사태를 보면 연예인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의 맹점이 보인다.

◆김건모 논란으로 후폭풍 맞은 '미운 우리 새끼'

SBS '미운 우리 새끼'는 최근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미혼으로 살아가는 중년들의 철없는 일상을 그 부모들이 관찰하는 콘셉트로 주목받았다. 김건모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개국공신으로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괴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집에다 정수기에 물 대신 소주를 가득 담아 이른바 '정술기'를 만들기도 하고, 소주 기행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은 시청자들에게 때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이를 상쇄시켜준 건 다름 아닌 엄마들이었다.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의 아들이 하는 일상의 '해괴한 짓들'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거나 "뭐하는 짓인지"하며 한탄 섞인 한 마디를 던지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가진 불편함을 대신 털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의 초반 전성기를 만든 주역들은 출연자들보다는 그 엄마들이었다.

하지만 엄마들의 아들이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때론 과하게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엄마의 시선으로 자식 챙기는(?) 그 멘트들도 점점 호응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만이 아니라 자식 같은 다른 연예인들의 일상을 엄마들이 들여다보는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더하기 시작했다.

최근 생활고를 토로했던 슬리피가 이상민을 만나 선배(?)로서의 조언과 위로를 듣는 광경이나, 배정남이 이성민과 함께 화보를 찍는 장면, 임원희와 정석용이 해돋이를 보러 정동진에 가서 펼쳐지는 짠내 가득 여행이 '미운 우리 새끼'에서 소개됐다. 그렇게 초반의 인기를 이어가는 듯싶었다. 김건모 논란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

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고 피해주장 여성을 대리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진 사안이 아니지만 이런 의혹제기는 공교롭게도 '미운 우리 새끼'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침 김건모의 결혼소식이 전해졌고, '미운 우리 새끼'는 그의 프로포즈 장면이 나갈 거라는 예고를 내보낸 상황이었다.

논란이 터진 후 '미운 우리 새끼'는 방송을 내도, 또 내지 않아도 곤란한 처지가 됐다. 내지 않는다면 마치 김건모 논란이 사실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고, 낸다면 시청자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운 우리 새끼'는 편집 없이 방송을 강행했다.

유튜브 채널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운영하는 강용석 변호사가 최근 가수 김건모를 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가로세로연구소 갈무리

◆김건모 사태가 끄집어낸 관찰카메라의 맹점

해외의 리얼리티쇼가 국내에서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리얼리티쇼는 말 그대로 리얼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프로그램 형식이다. 해외의 리얼리티쇼들은 일반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고 때론 폭로에 가까운 자극적인 영상을 내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네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관찰'이라는 다소 유화된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담는 내용도 폭로라기보다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게 관찰의 주체다. 누가 관찰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장면도 달리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MBC '나 혼자 산다'가 한 때 15%가 넘는 시청률을 내며 승승장구했던 건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관찰 영상에 대해 이런 저런 멘트를 덧붙이면서다. '나 혼자 산다'의 관찰 주체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 영상을 보며 던지는 짓궂은 농담들은 프로그램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미운 우리 새끼'에서 관찰의 주체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밉게 보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애정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관찰카메라는 관찰 주체의 호감과 애정이 기본 전제가 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건모 사태는 이런 관찰 주체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호감이 일순간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만들었다. 아직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런 구설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랬다. 그간 엄마의 시선이 상쇄시켜줬던 김건모의 갖가지 기행들은 호감이라는 필터가 치워짐으로써 달리 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런 문제는 '미운 우리 새끼'만이 아니라 '나 혼자 산다'나 MBC '전지적 참견 시점'같은 관찰카메라들도 벌어졌던 일들이다. '나 혼자 산다'는 기안84의 기행들이 호감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웃음을 줬지만, 때때로 그의 작품이나 행동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현무와 한혜진의 연애와 결별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의 색깔과 부딪히며 구설이 되기도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에 대한 매니저의 과한 관리(?)가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다. 본래는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관찰의 초점이었지만, 그것이 결국은 매니저의 연예인 띄우기가 아니냐는 시점으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호감은 조금씩 식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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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김건모 어머니가 김건모와 대화하고 있다. '미운 우리 새끼' 예고편 갈무리

◆연예인 관찰카메라 득만큼 실도 커

연예인 관찰카메라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것으로 해당 연예인의 호감을 키운다는 점에서 특별한 끼나 예능감이 없는 연예인들도 인기를 끌 수 있는 형식이다. 출연자는 그저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이를 관찰하는 이들의 호감어린 멘트들이 덧붙고, 자막과 편집까지 마술을 부리면 그 연예인은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관찰카메라는 결국 그 일상을 담아내기 때문에 그 호감어린 시선이 지워지는 어떤 사건이 터질 때 고스란히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커진 호감은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날 때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간다. 그건 해당 연예인에게도 큰 타격이지만 그에게 호감의 시선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에도 직격탄이 된다.

'미운 우리 새끼' 김건모 사태는 그래서 지금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한 연예인 관찰카메라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는 면이 있다. 한껏 집중된 관찰카메라의 조명을 그 연예인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지만, 조명이 꺼져버리고 드러나는 또 다른 실체는 더더욱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다. 이것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출연만 하면 존재감을 확 키워줄 것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의 실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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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 변호사(왼쪽)와 김세의 전 MBC 기자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가수 김건모를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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