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일 시키고 '쿠폰' 일당…"사장님 나빠요"

입력 2019-12-10 18:26:17 수정 2019-12-10 21:53:20

"차후 환전 가능하다" 속이고 금액 쓴 쿠폰 지급…수십명이 4억원대 피해 추정
영천 농장서 일한 외국인 노동자 수십여 명 피해…시민단체 대구노동청에 사업주 고발

경북 영천 농장에서 일한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종이돈(쿠폰). 이주노동자 대구경북 연대회의 제공
경북 영천 농장에서 일한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종이돈(쿠폰). 이주노동자 대구경북 연대회의 제공

2017년 출산한 딸의 육아를 돕기 위해 한국으로 온 50대 베트남인 부부. 이들은 취직이 불가능한 초청비자(C-3)로 입국했지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터라 한푼이라도 벌어볼 생각에 일자리를 알아봤다. 이들은 한국어에 능통한 베트남인 B씨를 만나 경북 영천시 신녕면에 살면서 A씨 업체에서 농장 파견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꼬박꼬박 임금을 지불하던 A씨는 지난해부터 일당 7만원 대신 황금색 바탕에 '1·5·7·10만원권'이라는 글자와 자기 연락처를 쓴 종이돈(쿠폰)을 주기 시작했다. 베트남인 부부에게 "나중에 환전이 가능하다"고 속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장인·장모가 종이돈을 가득 든 것을 수상히 여긴 한국인 사위가 강력히 항의해 밝혀졌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종이돈 임금 체불' 사건이 발생했다. 파견용역업체를 운영하는 A씨가 취직이 불가능한 초청비자(C-3)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다.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에 따르면 지난 2017년 A씨는 베트남인 B씨를 만나 베트남 노동자들을 양파·마늘·사과 농장 등에 파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B씨는 통역과 임금 정산 등 노무관리를 맡았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한국 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나중에 환전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속여 종이돈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강력한 항의 뒤에야 베트남인 부부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며 "하지만 나머지 노동자의 임금은 체불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임금 체불을 견디다 못해 이미 출국한 이들도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연대회의는 파견 인력이 지난해 150명, 올해 50명 가량인 점으로 미뤄 적어도 수십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적게는 100만원부터 많게는 3천만원까지 4억원 상당의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선희 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생존을 위한 노동을 제도로 불허해 임금을 받지 못함에도 죄인이 돼 임금 체불을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고 했다.

연대회의는 이날 오전 대구노동청 앞에서 A씨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A씨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외국인 노동자 급여를 종이돈으로 지급한 사업주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이주노동자 대구경북 연대회의 제공.
외국인 노동자 급여를 종이돈으로 지급한 사업주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이주노동자 대구경북 연대회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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